수에즈 운하 개통부터 에버기븐 사고까지- 수에즈 153년史

2022년, 2월 23일
수에즈운하역사


안녕하세요, 수출입 물류 플랫폼 트레드링스입니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교역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흥미로운 사건들이 많은 것 같아요. 불과 몇 백 년 전, 글로벌 교역은 어땠을까요?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기 전까지 유럽 사람들은 아시아(인도차이나)와 교역하기 위해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가거나 수에즈 지협의 육로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의 경우 런던에서 알렉산드리아까지 선박으로 이동한 다음 그곳에서 낙타 수천 마리로 승객과 화물, 물과 석탄 등을 홍해 연안까지 옮기고 그곳에서 다시 배를 타고 붐베이로 이동하는 식이었습니다.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는 유럽·아시아 간 무역의 핵심 통로인데요. 세계 무역 물동량의 13~15%와 해상으로 운송되는 원유 10%가 이 운하를 지나고 있어요. 그만큼 전 세계 물류에 있어 영향력이 거대해서 잠깐 막힐 때마다 전 세계 물류가 마비되곤 했습니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수에즈 운하 마비가 세계사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깊지는 않지만 아주 간략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제국주의 프로젝트, 수에즈 운하 건설

세계 3대 운하(수에즈 운하, 파나마 운하와 킬 운하) 중 하나인 수에즈 운하는 어떻게 하다가 건설되었을까요? 고대 이집트 때부터 지중해와 홍해를 잇기 위한 노력은 지속되었지만 결실은 변변치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영국·프랑스가 1849년 착공해 1869년 11월 17일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하는 역사적인 개통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유럽과 아시아 간 항로는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갈 때보다 절반가량 줄었으니 “수에즈 운하가 세계 해양 물류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라고 말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1869년 수에즈운하 개통 행사.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엄청난 기대로 모인 유럽 각국의 왕족과 정치인들
이미지=수에즈운하관리청(SCA)


물론 그 이면에는 당시 제국주의의 추악함과 주목하지 않은 많은 희생자들이 있습니다. 공사는 원래 계획했던 시간의 두 배인 11년이 걸려 1869년에 가서야 드디어 지중해 측 포트사이드와 홍해 측 수에즈 사이의 162.5km 수로를 연결했습니다. 개통 당시에는 하상 부분의 폭이 22미터, 수면 부분의 폭은 60~90미터, 깊이 6미터에 불과했고. 운하 통과 시간은 49시간 걸렸습니다. 런던-붐베이 항로는 5300km나 줄었습니다. 희망봉 루트와 비교했을 때, 런던에서 봄베이까지 51%, 콜카타까지는 32%, 싱가포르까지는 29%의 시간을 단축했습니다.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범선 항해는 석 달이 걸리지만 운하를 이용하는 증기선은 단 3주 만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사 시작 전부터 완공까지 내내 서구 열강들의 알력 다툼과 큰손 로스차일드가의 개입까지‥ 수에즈 운하는 단 한 번도 온전히 이집트 자국의 것이었던 적이 없었고 개통의 혜택은 자국, 이집트가 아닌 제국주의자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혹독했던 제국주의 시대는 길었지만 영원하지는 않았습니다. 처음 수에즈 운하는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소유였으나 이후 영국이, 그리고 1956년 이집트는 전격 국유화합니다. 수에즈 운하가 이집트 한 나라의 경제를 먹여살리기까지의 과정이 평탄하지 않았다는 걸 예상할 수 있겠죠?

이후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이스라엘까지 합류하여 수에즈 운하를 내놓으라고 이집트를 겁박했고 제2차 중동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처음에 미국 역시 이스라엘을 따라 이집트를 압박했었습니다. 그러자 이집트는 바위와 시멘트를 가득 실은 선박을 수에즈 운하 핵심 지점에 침몰시킵니다. 수에즈 운하를 폐쇄시켜 버린 것입니다. 이는 원유 공급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매일 몇백만 배럴의 중동 석유를 유럽으로 나르고 있는데 그 경로가 막혀 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이전처럼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으로 우회항로를 다시 이용해야 했기에 한 번에 많이 실을 수 있는 초대형 원유 운반선의 경제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에즈운하역사

그때나 지금이나 석유 제재는 그 어느 수단보다 위협적으로 강력하고, 강대국을 물러나게 만들기도 합니다. 석유 제재 위협은 결국 영국과 프랑스가 물러나는 결정적 이유였습니다. 물론 정치적/외교적인 다양한 이유도 있는데, 그 부분은 생략했습니다. 너무 간략하게 얘기했지만 어쨌든 이렇게 해서 다시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의 소유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해당 부분은 장진현, 『세계사 속 부의 대반전』, 2021. 을 참고했습니다.


컨테이너선 변천사


중동 전쟁으로 인한 수에즈 운하 항로 폐쇄는 해운 산업에 큰 변곡점을 가져왔습니다. 이전에는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후 최대한 많은 양을 싣는 것이 해운사의 목표가 됩니다. 이와 함께 점진적으로 단위당 물류비용을 줄이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데 그중 컨테이너선의 크기 늘리기가 대표적입니다. 물동량이 급격히 늘어나는 동시에 배의 크기도 점점 커지게 되자 해운사들은 초대형 컨테이너선 경쟁에 돌입합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도 방대해진 컨테이너선이 글로벌 물류 허브를 또 막게 됩니다.


수에즈 운하 ‘에버기븐(Evergiven)’ 좌초

작년 갑작스럽게 전 세계에 유명해진 에버 기븐 호는 수에즈 운하 153년 역사에서 좌초한 가장 큰 선박입니다.​

2021년 3월 23일 에버 기븐호는 ‘길이 400미터, 총톤수 22만 4천 톤’ 규모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으로, 중국에서 출발해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향하는 길에 수에즈 운하 남쪽에서 좌초를 당했습니다. 사고 발생 당시엔 원인을 특정할 수 없었지만 이후 이집트 당국의 조사 결과, 선장의 운전 미숙으로 빚어진 사고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여전히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200척이 넘는 선박이 길을 잃게 됐고 1690만 톤의 화물이 운송에 직접적인 지장을 받았습니다.

수에즈운하 사고


수에즈운하관리청(SCA)은 자체적으로 수행한 조사를 통해 “선장이 12분 사이 항로를 바로잡고자 8번의 지시를 내리는 과정에서 에버기븐호가 비틀거리다가 좌초됐다”고 발표했고 결과적으로 배상 합의에 성공하여 선박 압류도 풀렸습니다. 처음에 배상 규모가 1조 이상 청구했으나 협상을 통해 약 6000억대로 낮췄다고 보도됐습니다. 원칙상 배상금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해운전문지 로이드리스트가 추산한 피해 규모는 하루 90억 달러(약 10조 2,000억 원)에 달했습니다. SCA는 조속한 통항 재개를 위해 운하의 모래와 진흙 2만7,000㎥를 퍼냈고, 선박 무게를 줄이기 위해 9,000톤에 달하는 평형수를 빼내기도 했습니다. 수에즈 운하 마비는 단 6일이었지만 전 세계 물류대란은 일 년 내내 지속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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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초 사고로 인해 큰 손실이 생기자, 화물선의 크기가 갈수록 커지는 것을 염두에 두어 운하 확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목소리가 나왔는데요. 이에 수에즈운하관리청(SCA)는 수에즈 운하 청장은 수에즈 운하의 확장 공사 계획을 밝혔습니다. 계획에 따르면 좌초 사고가 발생했던 곳의 물길을 더 넓고 깊게 하고, 서로 다른 선박이 다른 방향에서 동시에 지날 수 있는 구간도 늘릴 예정입니다.

확장 공사에는 30억 이집트파운드(약 2천300억 원)가 투입되며, 공사는 내년 6월에 끝마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비용 문제로 운하 전 구간을 확장하지는 않습니다. 라비 청장은 지난해 6월부터 시작한 확장 공사의 구체적인 계획에 관해 “전체 운하 193㎞ 가운데 75㎞를 차지하는 양방향 통항 구간을 85㎞로 늘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버 기븐'(Ever Given)호 좌초 사고가 발생했던 곳도 물길 확장 구간에 속합니다.

코로나19와 작년 좌초 사건 같은 악재가 있었음에도 지난 1년 동안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에즈 운하는 2021년 사상 최대 선박 수송량을 달성했으며, 이를 배경으로 올해 2월부터 통행료가 인상됐습니다. 수에즈 운하 통행료 수입이 사상 최고치인 63억 달러(7조7천571억원)를 기록했다고 수에즈운하관리청이 밝혔습니다. 통과 선박은 모두 2만 694척으로 2020년의 1만 8천830척보다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이중 컨테이너선은 전년 대비 10% 증가한 5,186척이었습니다, 총 톤수는 12억 7,000만 톤에 달합니다.

수에즈운하


이렇게 수에즈 운하의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과 폐쇄 이유에 대해 ①전쟁 ②1척 선박 알아봤는데요. 에버기븐호 좌초 사태로 인해, 수에즈 운하는 디지털 시대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교역로라는 사실을 드러냈습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전쟁 또는 국가 간 갈등이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수에즈 운하의 일시적 폐쇄(운영 중지)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단 며칠의 일시적 마비여도 물류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단 1척의 선박으로 인해 글로벌 물류대란은 더 악화됐고, 더 장기화됐습니다.

이제 곧 수에즈 운하 좌초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되는데요. 아마 우리는 금방 잊을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작년 전 세계 물류가 마비되고, 공급망이 망가지는 걸 목격하며 리스크 대응의 한계를 느꼈을 거예요. 인간은 불가항력적인 문제들을 100%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사태 같은 정치 분쟁, 연이어 발생하는 자연재해 또는 이상기후 현상, 해상 환경 규제, 코로나19로 인한 도시 및 항구 봉쇄 등‥ 수없이 많은 문제들이 앞으로도 발생할 것이고 글로벌 공급망을 망가뜨리고 전 세계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수에즈 운하 좌초 사건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일어나는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를 다시 돌아보는 귀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단계별 대처방안 마련이 필요하고, 국가적인 면에서도 기업과 개인적으로도 리스크를 일련의 시스템 속에서 매뉴얼화해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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