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항로, 한중항로] 운임담합 처벌이 다른 이유 – 해운사의 위반 사항, 공정위와 해운업계의 입장 차이 까지

2022년, 6월 13일
[한일항로, 한중항로] 운임담합 처벌이 다른 이유 - 해운사의 위반 사항, 공정위와 해운업계의 입장 차이 까지

공정위가 한일항로에서 운임을 담합한 15개 선사들에게 8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한중항로에서 운임을 담합한 27개 선사에는 시정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대해 해운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상보다 많은 액수의 과징금을 부과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두 항로 모두 담합 사실이 인정됐는데, 한일항로는 예상보다 많은 액수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한중항로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것에 대해서도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들 선사들은 어떤 것을 위반한 것일까요? 그리고 공정위는 왜 이런 판단을 하게 된 것일까요?

공정위,
한일항로 15개 선사에 800억 원 과징금
한중항로 27개 선사엔 시정명령 조치

해운담합 제재 4년만에 마침표 찍어…총 1700억원 대 과징금으로 종결

지난 9일, 공정위는 한일 항로에서 2003년 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총 76차례 운임을 합의한 15개 선사(14개 국적선사, 1개 외국적 선사)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800억 원(잠정)을 부과하고,

한중 항로의 경우 2002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총 68차례 운임 합의가 이뤄졌고, 이와 관련된 27개 선사(16개 국적선사, 11개 외국적 선사)에 대해서는 시정명령 조치를 내린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함께 한일항로 담합의 구심점이 됐던 한국근해수송협의회(한근협)에는 과징금 2억 440만 원을 부과하고, 한중항로 담합의 중심인 황해정기선사협의회(황정협)에는 과징금 없이 시정명령만 내렸습니다.

이로써 2018년부터 진행된 해운 담합 제재는 4년 만에 마침표를 찍게 됐는데요,

지난 1월 제재가 이뤄진 한국~동남아시아 항로의 과징금 962억을 합치면 총 1,700억 원 대 과징금으로 종결되었습니다.

한일항로 / 한중항로 선사들 위반 내용은?

이번에 제재를 받은 선사들은 한일항로 – 15개 선사 / 한중항로 – 27개 선사 이며, 해당 선사들의 list는 아래와 같습니다.

공정위는 이들 국내‧외 선사들은 회합 및 기타 의사 연락을 통해
한일항로는 2003년 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총 76차례,
한중항로는 2002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총 68차례
컨테이너 해상 화물운송 서비스 운임에 대해서 합의했으며, 대부분 해수부 신고 없이 이를 실행했다고 밝혔는데요,

세부 내용들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 각종 운임 합의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선사는 항로의 운임을 인상하거나 유지를 목적으로 ▲기본 운임의 최저수준 ▲각종 부대 운임 도입 및 인상 ▲대형 화주에 대한 투찰가 등 제반 운임에 대해 운임을 합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저운임의 경우 한-일, 한-중, 한-동남아 등 3개 항로에서의 동시 기본 운임 인상에 대해 주요 선사 사장들 간의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2003년 10월부터 선사간 최저운임(AMR)을 합의하고 실행했고,

부대 운임의 경우 운임 인상 및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EBS(긴급유류할증료) 및 THC(터미널 조작 수수료) 등 다양한 부대비용[CCF(컨테이너 청소비), DOC(서류발급비) 등을 새롭게 도입하거나 운임 인상을 협의했습니다.

또한 대형화주들의 입찰이 이루어지는 시기를 전후로 선사간 투찰 가격을 합의한 것으로 들어났는데요, 투찰가격은 통상 선사들이 합의한 최저운임의 연장선상에서 결정됐고, 담합 내용을 숨기기 위해 합의 운임에서 10달러를 높여 투찰하거나, 낙찰된 선사 이외에는 화물 선적을 금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선사들은 보다 높은 수익을 냈는데요, 일례로 한-일항로에서 선사들은 2008년 한해에만 620억 원의 수익(비용절감 120억 + 추가 부대비 징수 500억 원)을 달성했고, 운임 수입 증대 및 흑자 경영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2. 합의 내용에 대한 감시 및 제재

공동 행위에 가담한 선사들은 협의한 내용들이 보다 잘 지켜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공동행위 초기부터 한국근해수송협의회(한근협), 황해정기선사협의회(황정협)을 중심으로 감시도 실시했습니다.

이들은 공동 대응에 참여하지 않은 선사에게는 TEU당 500$의 페널티를 부과하고, 합의된 운임을 위반한 선사에게는 6개월간 선복 제공을 중단하는 페널티도 수립하는 등 제재에 대한 기준안을 마련했는데요, 여기에 2016년 7월에는 ‘3개 항로 합동 중립위원회’를 설치해 근해 3개 항로(동남아, 중국, 일본)의 운임 합의 실행 여부를 보다 치밀하게 감시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중립위원회는 2016~2018년 동안 총 7차례 운임 감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한일항로에서 합의 위반 선사들에게는 총 2억 8천만 원의 벌과금 부과했고, 한중항로에서 합의 위반 선사들에게는 총 8천만 원의 벌금도 부과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3. 화주를 대상으로 한 보복 행위 및 화주의 선택 제한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선사는 본인들이 합의한 운항 비용을 준수하지 않거나, 맹외선(해운동맹이 지배하는 정기 항로에 끼어드는 동맹 외 선박)을 이용한 화주에 대해서는 컨테이너 입고 금지, 예약취소 등 공동으로 선적을 거부하는 방식을 동원하여 보복도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이런 행위는 중소·중견기업은 물론 삼성, LG, 현대, 기아 등 대기업 화주들도 예외가 아니었는데요, 이들 화주는 선사들이 제시한 운임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서면으로 제출하기 전까지 선적 거부 피해를 감수해야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한 이들 선사는 ‘기거래 선사 보호 시스템’을 통해 화주들의 선택이나 물량을 제한하여 경쟁을 제한했고, 협상력을 높여 운임을 인상했는데요, 이 시스템은 다른 선사들의 화물을 침탈하지 않고, 기존 자신들의 거래처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으로, 만약 A 선사를 이용하던 화주가 B 선사에 선적을 의뢰했을 경우, A 선사가 제시한 운임보다 높게 제시하여 A 선사를 이용하도록 유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4. 담합의 위법성을 인지하고 은폐 시도

공정위는 이들 선사가 자신들의 운임 담합 및 기거래 선사 보호, 선적 거부 등의 행위가 공정거래법에 위반된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은폐했다고 판단했는데요,

대외적으로는 이들이 합의한 운임은 공동행위로 정한 운임이 아닌 개별 선사 자체 판단으로 결정한 운임이라고 알렸으며, 운임 인상 시 담합의 의심을 피하고자 약간의 금액 차이를 두거나 2~3일 정도 차이를 두고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회의록, 최저운임, 투찰가 결정 내역 등은 대외비로 따로 관리하고, 주고받은 이메일 등 담합의 증거가 될 수 있는 자료들은 삭제하는 등 증거 인멸도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뉴스레터

해운협회 “정상적 공동행위”였다며 반발
이렇게 주장하는 진짜 이유는?

해운협회“공정위 2004년에 선사간 공동행위는 해운법에 의한 정당한 행위”라고 밝혀

한편 해운협회는 공정위의 이번 결정이 발표되자마자 즉각 성명서를 내고 “공정위가 해운업의 기본적인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정을 내렸다”며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정기 선사들의 운임 담합 처분을 즉각 철회해달라”고 촉구했습니다.

해운협회는 “해운법상 정당한 협의와 신고가 있었음에도 공동행위가 부당하다고 판단한 건 해운법 취지에 어긋난다”라며 “국제관례와 법령에 반하는 일방적인 제재”라고 강조했는데요,

이어 “공정위 결정으로 국내 해운산업만 몰락하고, 나아가 외국 대형 선사의 우리나라 항만 기피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며 “수출입 화물 해상운송비 증가와 함께 화주들의 적기 수송에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해운협회가 이처럼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유에는 사실 어느 정도 근거가 있습니다. 과거 공정위가 근해항로 선사들의 공동행위를 적법하다고 판단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3년 11월, 국제물류협회는 선사들의 한일항로 및 한중항로, 동남아 항로에 최저운임을 도입에 반발하며 공정위에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문의했었습니다.

당시 국제물류협회는 선사들이 도입한 최저운임은 기본운임인상(GRI)형태의 운임회복 방식이 아니고, 화주와 협의하는 절차가 없었다는 점을 들어 위법이라고 주장했는데요, 이에 공정위는 한일항로 동맹인 한국근해수송협의회(한근협)를 3일간 조사한 뒤 2004년 1월, 선사들의 행위가 적법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국제물류협회에 통보했었습니다.

또한 2019년 6월 24일 공정위 카르텔 총괄과는 국민신문고 민원 게시판에 “가격 담합을 인정하는 예외 사례가 있느냐”는 질문에 “공정거래법상 가격담합에 대해 예외를 인정하는 관련 규정은 동법 제58조(법령에 따른 정당한 행위) 등이고 대표적인 사례가 해운법 제29조(운임 등의 협약) 규정에 따른 외항화물운송사업자들 간의 운임 공동결정 행위가 있다”고 답을 올렸던 적도 있습니다.

해운협회는 이 같은 점을 근거로 공정위의 이번 결정이 자기부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이번 과징금을 산정할 때 부산항을 단순히 스쳐 가는 환적화물에 대해서도 과징금을 부과한 건 해운업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며 “제1의 환적항만을 지향하고 있는 부산항의 존재를 부인하는 처사”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한일, 한중, 동남아 항로 취항 선사들이 부당이익은커녕 낮은 운임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었던 건 주지의 사실”이라며 “해운 공동행위의 정당성을 회복하기 위해 행정소송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공정위 ”선사들, 절차 준수하지 않았고,
위반 행위 내용도 법의 한계를 벗어나…”

이처럼 해운사들의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지만 공정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공정위는 한일항로, 한중항로 운항 선사들이 그 동안 법에 규정된 절차를 준수하지 않은데다 화주, 또는 공동행위 위반 선사에 대한 보복 행위 등은 법의 한계를 벗어났다면서 이번 운임 담합은 불법적인 공동행위로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이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해운법에 따른 공동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30일 이내에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신고해야 하고, 신고 전에 합의된 운송 조건에 대해서도 화주 단체와 협의하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 한일항로에 신고된 건수는 단 7건으로, 69차례의 운임 합의가 신고되지 않았고, 한중항로 역시 61차례의 운임합의가 신고되지 않았죠.

여기에 조사 과정에서 해운사들이 증거 은폐에 적극 나선 것을 두고 공정위는 선사들이 공정거래법 위반 사실을 인지하고 적발될 것을 우려해 벌인 일로 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조홍선 공정거래위원회 카르텔조사국장은 “화주에게 합의 수준보다 낮은 운임을 제시하는 선사를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하며 공동 운항 노선에서 배제시키고 벌과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선사들의 동참 및 이행을 강제했다”며 “화주들에게도 선적 거부 등을 통해 합의 운임을 관철시켰다”고 말했습니다.

한일항로에는 800억 과징금
한중항로에는 솜방망이 처벌..이유는?

한편 한일항로와 한중항로 모두 담합이 인정됐지만 한일항로에는 총 800억 원의 과징금을, 한중항로에는 단순 시정명령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것을 두고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미 안보·산업 동맹 강화로 중국과의 관계가 냉각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가운데, 이른바 ‘외교적 판단’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 4월, 중국 해운교통 당국인 교통운수부 수운국은 “한중 해운 회담 합의에 따라 관리되는 한중항로의 특수성을 고려해달라”는 취지의 서한을 우리 정부에 전달하기도 했죠.

이에 대해 공정위는 “양국 정부가 해운협정·회담을 통해 선박 투입량을 관리해 온 점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는데요, 특히 “한중항로는 선복량(공급물량)이 이미 결정된 시장인 만큼 운임 합의에 따른 경쟁 제한 효과나 파급력이 크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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