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 담합] 공정위 과징금에 해운업계가 반발하는 진짜 이유

2022년, 2월 3일

지난 달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외 23개 선사에 운임 담합으로 이유로 과징금 962억원을 부과하기로 한 이후 한달 가까이 지났지만 논란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해운협회는 즉각 행정소송 추진하겠다며 반발했고,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까지 ‘불합리하다’며 공식 언급하면서 논란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이번 사태가 자칫 제 2의 한진해운 사태를 만들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데요, 도대체 왜 이렇게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불합리하다” 해수부, 이례적으로 공식 언급한 이유는?

사실 해수부가 다른 정부 부처의 결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발하는 목소리를 낸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담합을 견제해야 할 담당 부처가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선사만 감싸고 있다”, 혹은 “정권 말기 레임덕 때문에 부처 간 조율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등 여러 비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수부가 이러한 비판을 무릅쓰면서까지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은 아마 두번 다시 한진해운 사태와 같은 일을 반복되도록 둘 수 없다는 절실함 때문입니다.

지난 2016년 해수부는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한진해운의 기업회생절차를 결정하는 것을 막지 못해 해운업 경쟁력이 무너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는데요, 이번 사태 역시 공정위 제재로 발생될 여러 문제들을 놓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공정위의 이번 결정이 제2의 한진해운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

이번 공정위의 결정을 두고 지난 한진해운 사태를 떠올리는 이유는 해운업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원칙만 내세우고, 해수부와 해운업계의 경고를 듣지 않았다는 측면이 과거 한진해운 사태와 매우 닮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16년 금융위원회와 산업은행 등 금융권은 해운업에 대한 특성을 무시한 채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개별 기업의 부족 자금은 기업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라는 원칙을 내세우면서 금융적인 측면만 따지기 급급했습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화물을 실어 나르는 해운업에 대한 이해 없이 금융손실을 최소화하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한 것이죠.

당시 해수부를 포함한 해운업계에서는 해운업의 국가적인 중요성과 함께 정기 컨테이너선사라는 산업적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수없이 경고했습니다. 장기계약 비중이 높은 벌크 등과 달리 컨테이너는 단기계약 비중이 커 법정관리를 시작하는 순간 회생이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 처럼 한진해운 사태는 발생했고, 그 결과 운임 수입만으로 3조원을 잃었을 뿐 아니라 과거 한진해운이 있었던 수준 정도로 되돌아가기 위해 현재 수조원의 자금을 HMM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전 세계 해운 역사에서 유례없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사의 갑작스러운 파산으로 수출입 물류 대란이 수개월 넘게 지속되면서 한국 해운이 가진 신뢰라는 자산도 깎아 먹었죠. 이에 대해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은 2020년 11월 온라인 기자간담회를 통해 한진해운 파산은 잘못된 처리였다며 슬쩍 발을 빼고 있습니다.

선사간 운임 공동행위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결국 법 해석의 차이

공정위는 선사들의 운임 공동행위에 대해 담합을 했으면 제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해운법상 선사들은 공동행위를 30일 이내 해수부에 신고해야 하는데요, 공정위는 선사들이 122건을 신고하지 않았다며 이에 대해 문제를 삼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해운사 및 해수부는 해당 기간 19건의 기본적 공동행위가 신고됐는데 여기에는 공정위가 문제를 제기한 122건은 세부 사안이므로 신고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결국 해운법과 공정거래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느냐는 차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번 사건이 불러올 후폭풍에 대한 우려 커지고 있어…

전 세계로 서비스하는 해운업 특성상 한 국가에서 불공정행위로 제재를 할 경우 관련 국가에서 연쇄 제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실제로 제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외국 선사들은 국내 영업을 축소하겠다고 경고했고, 일본과 중국 등 일부 국가는 자국 내에서도 강력한 조사를 예고한 상태입니다.


여기에 영세한 국적 중소선사는 과징금 납부를 위해 선박 등 핵심 자산 매각이 불가피해 생존마저 위태로운 상황이죠.

화주들에게는 어떤 영향이 미칠까?

자,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선사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화주는 어떻게 될까요?


사실 이번 공정위 제재로 화주들 역시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공동행위가 폐지되면 외국계 대형선사의 과점화가 심화되면서 운임이 올라 화주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일본과 유럽 등에서는 공동행위가 없어지면 일부 대형선사의 시장 과점화가 나타나면서 운임이 오른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죠.

국내 화주들은 국적 선사와 국내 화주 간 원활한 협력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국내 화주를 대표할 수 있는 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통합물류협회 등 거의 모든 화주 단체가 이러한 입장문을 제출했으며, 운임 담합을 신고하면서 이번 사태 계기가 된 목재합판유통협회 역시 지난 2019년 신고를 자진 취소했습니다.

해수부나 해운업계 입장에서는 한진해운 사태가 발생한 지 불과 몇 년도 되지 않아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큽니다. 호재인 줄도 몰랐던 코로나19라는 우연한 변수로 업황이 크게 회복됐다고 해도 아직까지 한진해운 파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공정위는 이번 한·동남아 노선을 제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중, 한·일 노선에서도 운임 담합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중소선사 비중이 큰 두 노선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큰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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