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회복탄력성, 효율적인 공급망도 위기에 흔들리는 이유와 대비법

2026년, 10월 27일

안녕하세요. 물류의 새로운 기준, 트레드링스입니다.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공급망 회복탄력성의 한계가 드러나는 일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공급망 회복탄력성은 공급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견디고 빠르게 정상으로 돌아오는 능력을 말하죠. 이 능력을 높이는 핵심 수단 가운데 하나가, 문제가 생긴 순간 다른 공급처나 생산지, 운송 경로로 옮겨 갈 수 있는 공급망 유연성입니다.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Airbus)는 주력 여객기인 A320neo 계열에 엔진을 공급하는 두 곳 가운데 프랫앤드휘트니(Pratt & Whitney)의 납품 지연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되면서, 2026년 1분기 항공기 인도량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16% 줄었습니다.

반도체 장비 업체 KLA는 장비에 들어가는 특정 D램 칩을 공급업체들이 단종하면서 칩 가격이 급등했고, 늘어난 비용이 2026년 매출총이익률을 끌어내릴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지난해 10월, 중국이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반도체 업체 넥스페리아(Nexperia)의 중국 공장 생산 제품 수출을 막자 혼다(Honda)가 멕시코 공장 가동을 멈추기도 했습니다.

세 기업 모두 아무 대비 없이 이런 일을 겪은 것은 아닙니다.

에어버스에는 CFM이라는 또 다른 엔진 공급사가 있었습니다. 에어버스는 CFM과 추가 물량을 충분히 논의했지만, CFM은 이미 공급량을 늘려 주기로 한 상태에서 2026년에는 합의한 수준 이상으로 생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에어버스 기욤 포리(Guillaume Faury) CEO는 CFM이 이미 운항 중인 항공기 지원까지 챙겨야 해 추가 공급 여력이 제한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고 프랫앤드휘트니 엔진을 미리 확보해 둔 여유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KLA는 평소 대체 공급업체 후보를 찾아 두고 핵심 부품 재고도 관리해 왔습니다. 다만 대체 공급업체의 검증까지 반드시 마쳐 두지는 않았고, 일부 핵심 부품은 공급업체가 한 곳이거나 극소수뿐이었습니다. 공급업체들이 칩을 단종하자 KLA는 오른 가격에 칩을 사들이며 구매 약정을 늘려야 했습니다.

넥스페리아 칩을 쓰던 완성차 업체들도 보통 일정량의 재고와 대체 공급업체를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넥스페리아가 공급하던 물량이 워낙 많아 그만큼을 대신할 곳을 빨리 찾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칩이 부품에 직접 납땜된 경우가 많아 다른 칩으로 바로 바꿀 수 없었고, 새 칩은 시험에만 몇 달이 더 걸릴 수 있어 대체 공급처를 찾더라도 선뜻 바꾸기 어려웠습니다.

이처럼 세 사례 모두 대비책은 있었지만, 위기가 닥친 순간에는 그것을 바로 쓸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대비책까지 세워 둔 기업들이 왜 위기 앞에서 이렇게 흔들렸을까요?
그리고 위기 때 실제로 쓸 수 있는 대비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도미노처럼 차례로 쓰러지는 컨테이너로 표현한 공급망 차질의 연쇄 효과

효율적인 공급망도 위기에 흔들리는 이유

흔히 공급망이 길고 복잡할수록 위기에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부품이 여러 나라를 거쳐 들어올수록 문제가 생길 곳도 많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위기 때 가장 크게 고전하는 기업은 공급망이 긴 기업보다, 문제가 생겼을 때 바꿔 쓸 수 있는 선택지가 적은 기업인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선택지란 위기 때 실제로 바꿔 쓸 수 있는 대안을 말합니다. 부품을 사 오는 공급업체, 제품을 만드는 공장,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 운송 경로나 재고를 끌어올 창고 같은 것들이죠.

그런데 대안이 있다고 해서 모두 선택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서두의 세 기업도 대체 공급처를 두고 있었지만, 막상 위기가 닥치자 바로 쓰지 못했습니다. 공장과 공급업체, 물류 파트너가 모두 효율적으로 돌아가던 기업도 관세가 바뀌거나 공급업체에 문제가 생기거나 운송 경로가 끊기면 이런 상황에 부딪힙니다. 대안마다 미리 해 둬야 할 준비가 있는데, 그 준비가 빠져 있으면 대안은 있어도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먼저 공급업체를 바꾸는 경우입니다. 새 공급업체의 부품은 품질과 안전 기준을 통과하는지 시험하고 승인받는 과정, 즉 검증을 거쳐야 쓸 수 있습니다. 대체 공급업체를 찾아 두기만 하고 검증을 마쳐 두지 않았다면, 위기가 닥친 뒤에야 이 과정을 시작해야 합니다. 서두의 넥스페리아 사태 때도 이 과정에 몇 달이 걸릴 수 있었고, 업계에서는 1년 가까이 걸릴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공장을 바꾸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세가 갑자기 오르거나 한 공장이 멈추면, 같은 제품을 다른 나라나 다른 공장에서 만드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품을 만들려면 그 제품에 맞는 금형과 공구 설비(툴링)가 있어야 합니다. 옮겨 갈 공장에 이 설비가 없으면, 공장은 있어도 그 제품을 바로 만들 수 없습니다.

부품을 바꾸는 경우에는 회사 시스템이 걸림돌이 됩니다. 많은 제조 공장은 시스템이 짠 계획에 따라 움직입니다. 시스템에는 제품마다 어떤 부품이 몇 개 들어가는지 적힌 부품 목록(BOM, 자재명세서)이 있고, 시스템은 이 목록을 보고 필요한 부품을 계산해 발주하고 생산 지시를 내립니다.

그런데 대체 부품이 이 목록에 없으면 시스템은 그 부품을 발주하지도, 생산에 쓰도록 지시하지도 않습니다. 대체 부품을 구해 와도 시스템상으로는 여전히 부품이 모자란 것으로 나와 생산 계획을 세우기 어렵습니다. 목록에 추가하려면 이 부품을 써도 된다는 설계 변경 승인을 받고, 그 내용을 이 제품을 만드는 모든 공장과 관련 문서, 공급업체, 서비스 조직에까지 반영해야 합니다.

폭풍 속에 금이 가 무너지는 동전 다리 위의 트럭, 준비가 부족해 위기 때 쓸 수 없는 공급망 대안

정리하면, 이런 기업들은 대안을 마련해 두었지만 그 대안을 실제로 쓰기 위한 준비가 따라오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준비가 미리 돼 있지 않았을까요?
이는 지난 20년 동안 공급망이 어떤 기준으로 만들어져 왔는지를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글로벌 제조업체들은 부품을 비용이 낮고 공급업체가 몰려 있으며 기술력이 뛰어난 곳에서 만들고, 완제품 조립과 배송은 고객이 있는 시장 가까이에서 하는 방식으로 공급망을 짜 왔습니다. 그 결과 중국이 수많은 부품 생산의 중심이 됐고, 베트남 같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비용과 생산 능력 면에서 대안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역마다 조립 거점을 두어 고객에게 빠르게 제품을 전달했습니다.

이 방식의 핵심 기준은 비용과 효율이었습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검증만 해 두고 평소에는 쓰지 않는 두 번째 공급업체나 다른 공장의 물량을 대신 받아 줄 여분의 설비는 돈만 드는 낭비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이런 준비는 뒤로 밀리기 쉽습니다.

물론 이 방식은 오랫동안 잘 작동했고, 지금도 무너진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 방식이 무역 규칙과 운송 경로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서 효율적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홍해 선박 공격으로 컨테이너선이 아프리카 남단으로 돌아가고, 새 관세가 매겨지고, 서두의 넥스페리아 사태처럼 수출 통제로 부품 공급이 끊기는 등 이 전제가 맞지 않는 일이 계속 벌어졌습니다.

이제는 공급망 효율성만 따져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만큼만 제때 들여와 재고를 줄이는 적시 생산(JIT, Just-In-Time) 방식에, 만약의 상황을 미리 대비하는 저스트인케이스(JIC, Just-In-Case) 사고를 더해야 합니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려면 기업이 던지는 질문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중국 생산을 다른 나라로 옮길까?”, “가까운 나라로 생산을 옮길까?”, “재고를 늘릴까?”를 주로 고민했다면, 이제는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실제로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주문 물량을 다른 공장이나 지역으로 돌릴 수 있는지, 생산을 다른 공장으로 옮길 수 있는지, 다른 공급업체에서 부품을 살 수 있는지, 다른 창고의 재고를 끌어올 수 있는지, 다른 운송 경로를 쓸 수 있는지, 제품 사양을 바꿔 다른 부품을 쓸 수 있는지를 따져 보는 것입니다. 이미 고객에게 판매해 설치한 장비(설치 기반)를 계속 정비하고 지원할 수 있는지도 함께 봐야 합니다.

회복탄력성을 갖춘 공급망은 미래를 정확히 맞히는 공급망이 아닙니다. 미래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때 꺼내 쓸 수 있는 선택지를 미리 준비해 둔 공급망입니다.

여러 공급업체에서 트럭과 선박으로 부품을 받는 공장으로 표현한 공급망 다변화

공급망 유연성의 출발점, 부품 조달처 다시 정하기

그렇다면 이런 선택지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그 시작은 부품을 어디서, 어떻게 사 오느냐입니다. 서두의 세 기업이 흔들린 것도 모두 부품을 대 주던 공급업체 쪽에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다른 공급업체를 하나 더 둔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새 공급업체가 기존 공급업체와 같은 나라에 있다면, 그 나라 제품에 관세가 매겨지거나 무역 규제가 생길 때 함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공급업체가 몇 곳인지만큼이나 그 공급업체들이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있는지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부품을 어디서 사 올지 다시 정하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 공급처를 여러 나라로 늘리는 다변화
  • 한 지역 안에서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해결하는 지역화
  • 정치·외교적으로 가까운 나라로 생산을 옮기는 프렌드쇼어링
  • 핵심 부품만 본국으로 가져오는 선별적 리쇼어링

첫 번째는 공급망 다변화입니다. 한 나라나 한 공급업체에만 기대지 않도록 공급처를 여러 곳으로 늘리는 방법입니다. 많은 기업이 부품을 중국에 크게 의존해 온 만큼, 다변화는 흔히 중국 외에 공급처를 하나 더 두는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plus one)’이라고 불립니다. 다만 현실에서는 여러 곳을 더 두는 ‘차이나 플러스 세버럴(China plus several)’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중국을 완전히 빼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많은 부품에서 중국은 생산 규모와 공급업체 수, 기술 대응 속도, 금형·설비 역량이 뛰어나 여전히 대체하기 어렵습니다. 목표는 중국을 없애는 것보다 특정 나라나 공급업체, 지역, 무역 항로 하나에 지나치게 기대지 않으면서 가격 협상력도 지키는 것입니다. 베트남, 인도, 말레이시아, 태국, 멕시코, 동유럽, 튀르키예 등에서 공급처를 추가로 검증해 두면 위기 때 움직일 여지가 생깁니다.

다만 다변화는 겉보기와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베트남 공급업체를 새로 확보했는데 그 업체가 쓰는 부품이나 원자재, 설비, 기술 지원이 여전히 중국에서 온다면 실제로는 중국 의존이 그대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서로 다른 두 공급업체가 알고 보니 같은 하위 공급업체에서 부품을 받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송장이 어느 나라에서 발행되는지만 봐서는 안 됩니다. 핵심 원자재와 기술, 설비, 생산 능력이 실제로 어디에서 나오는지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공장과 창고, 운송 경로를 한 섬 안에 모아 표현한 공급망 지역화

두 번째는 공급망 지역화입니다. 지금까지는 부품은 아시아에서 만들고 각 지역 거점에서는 마지막 조립만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역화는 일부 제품에 대해 부품 생산부터 완제품까지 한 지역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공급망을 갖추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하면 부품이 먼 거리를 이동할 필요가 줄어 납기(리드타임)가 짧아지고 물류 차질의 영향도 줄어듭니다. 고객 요청에 더 빨리 대응할 수 있고, 관세나 국경 문제의 영향도 덜 받습니다.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듭니다. 지역마다 장비와 재고, 품질 관리 체계, 엔지니어링 인력을 따로 갖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품 구매 가격이나 공장 원가만 보면 손해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공급이 끊겼을 때 생기는 손실까지 함께 계산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매출 손실과 긴급 운송비, 설치 지연, 서비스 위약금, 고객 불만, 경영진이 문제 해결에 매달리는 시간까지 모두 비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기가 없는 상황을 전제로 계산한 최저 착륙 원가(landed cost, 제품을 들여오기까지 드는 모든 비용을 합친 원가)보다 위험까지 반영한 총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더 높은 마진과 안정적인 서비스 매출, 오래가는 고객 관계를 목표로 하는 제조업체일수록 이 기준이 더 중요합니다.

다리로 이어진 두 공장 위의 하트와 멀리 떨어진 공장으로 표현한 프렌드쇼어링

세 번째는 프렌드쇼어링입니다. 공급망의 민감한 부분을 주요 판매 시장과 정치·외교적으로 가까운 나라로 옮기는 방법입니다. 지역화와 비슷해 보이지만, 비용이나 거리보다 정치적 판단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고객이 원산지나 공급 안정성, 규제 문제를 중요하게 보는 분야라면 효과가 큽니다. 다만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방’ 관계가 영원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정치 관계와 무역 규칙은 바뀔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원산지를 실제로 관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최종 조립만 우방국으로 옮기고 핵심 전자부품이나 주조품, 자석, 규제 대상 부품이 여전히 위험한 곳에서 온다면 효과가 거의 없습니다.

네 번째는 선별적 리쇼어링입니다. 해외에 있던 생산을 본국으로 다시 가져오는 방법인데, 핵심은 ‘선별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모든 생산을 되가져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국내에 관련 공급업체가 충분하지 않다면 오히려 더 취약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리쇼어링은 공급이 끊기면 매출이 멈추거나, 고객에게 피해가 가거나, 기술이 유출되거나, 현장 서비스에 큰 문제가 생기는 핵심 부품에 집중할 때 효과가 큽니다. 리쇼어링을 구호처럼 내세우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숙련 인력과 공급업체, 장비, 유지보수 역량, 품질 관리 체계가 갖춰지지 않으면 본국 가까이에 비싸고 약한 공급망을 하나 더 만드는 셈이니까요.

방법무엇인가좋은 점조심할 점
다변화공급처를 여러 나라·업체로 늘리기특정 나라·업체 의존 완화, 협상력 유지새 공급업체도 중국산 부품·원자재에 기댈 수 있음
지역화한 지역 안에서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해결납기 단축, 물류·관세 영향 축소, 빠른 고객 대응장비·재고·품질 관리 중복으로 비용 증가
프렌드쇼어링우방국으로 민감한 생산 이전원산지·공급 안정성·규제 대응우방 관계는 바뀔 수 있고, 핵심 부품 원산지 관리가 필수
선별적 리쇼어링핵심 부품만 본국으로 이전핵심 부품 공급 안정, 기술 보호인력·공급업체·장비가 없으면 비싸고 취약해짐
Tradlinx
퍼즐 조각을 끼우는 장치와 쌓인 상자로 표현한 대체 부품 설계와 재고 전략

제품 설계와 재고로 선택지 넓히기

새 공급처를 확보했다고 해서 그 공급처를 바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새 공급처에서 받은 부품이 우리 제품에 그대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급처를 실제로 쓸 수 있느냐가 제품을 어떻게 설계했느냐에도 달려 있는 이유입니다.

제품이 큰 재설계나 재인증 없이도 다른 회사의 부품, 지역마다 다른 부품 구성표(BOM, 자재명세서), 다른 소재, 모듈형 부품을 받아들일 수 있게 설계돼 있다면 공급처를 바꾸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반대로 모든 부품이 특정 사양에 맞춰 서로 단단히 묶여 있다면, 조달 부서가 아무리 좋은 공급처를 찾아도 그 부품을 쓸 수 없습니다.

이렇게 유연한 설계를 하려면 처음부터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부품끼리 연결되는 방식(인터페이스), 허용 오차(공차), 미리 승인해 둔 대체 부품, 시험 방법, 소프트웨어 호환성, 사후 서비스에 미칠 영향 등입니다.

물론 부담도 있습니다. 설계 단계에서 일이 더 많아지고, 관리해야 할 제품 종류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제품 구성과 변경 이력을 관리하는 체계(형상 관리)가 약하면, 여러 부품을 쓸 수 있게 한 설계가 오히려 문서 관리와 품질 관리의 부담이 됩니다. 그래도 오래 쓰는 산업용 제품이라면 위기가 닥친 뒤 고치는 것보다 새 제품을 만들 때부터 유연하게 설계하는 편이 훨씬 쉽습니다.

제품을 공통 부품과 모듈 중심으로 설계해 두면 생산 방식에서도 선택지가 생깁니다. 대표적인 방법이 지연(postponement) 전략입니다. 고객과 먼 곳에서 완제품을 사양별로 모두 만들어 두는 대신, 공통 부품이나 반제품까지만 만들어 두고 최종 조립은 고객이 있는 지역 가까이에서 하는 방식입니다. 어떤 사양으로 완성할지를 마지막까지 정할 수 있어 팔리지 않고 남는 완제품이 줄고, 고객 요청에도 더 빨리 대응할 수 있습니다.

다만 마지막 조립을 맡는 지역 거점의 부담이 커집니다. 이 작업을 제대로 하려면 기술 인력과 도구, 시험 장비, 작업 표준서, 품질 관리, 시스템을 모두 갖춰야 합니다.

설계와 생산 방식을 바꾸는 데는 이처럼 시간과 준비가 필요합니다. 당장 위기가 닥쳤을 때 시간을 벌어 줄 수 있는 가장 빠른 수단은 여전히 재고입니다. 핵심 부품이나 들여오는 데 오래 걸리는 부품, 서비스용 부품을 여유 있게 쌓아 두면 효과가 큽니다.

하지만 재고를 쌓는 것만으로 유연성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재고는 시간을 벌어 줄 뿐, 다른 곳으로 옮겨 갈 선택지를 만들어 주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재고가 바닥나기 전에 다른 공급처나 다른 부품으로 옮겨 가지 못하면 같은 문제에 다시 부딪히게 됩니다.

그래서 무조건 재고를 늘리기보다 원자재, 부품, 반제품, 완제품, 서비스 부품 가운데 어느 단계에 쌓아 둘 때 위기에 가장 강해지는지를 따져야 합니다. 이미 판매해 설치한 장비가 많은 기업이라면 서비스 부품에 특히 신경 써야 합니다. 값싼 부품 하나가 없어서 고객의 장비 전체가 멈출 수 있기 때문이죠.

경고등이 켜진 공장과 컨베이어로 연결된 다른 공장들로 표현한, 생산을 옮길 수 있는 공장 네트워크

생산을 옮길 수 있는 공장 네트워크 만들기

공급처와 제품, 재고를 아무리 잘 준비해도 그 제품을 어느 공장에서 만들지의 문제는 남습니다. 한 공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공장에서 대신 만들 수 있어야 이것도 선택지가 됩니다.

이를 위한 방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여러 공장의 운영 방식을 비슷하게 맞추는 공장 표준화, 한 공장에서 여러 제품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구성 유연 공장, 외부 업체에 생산을 맡기는 아웃소싱입니다. 셋 중 어느 하나가 정답은 아닙니다. 각각 다른 방식으로 유연성을 만들어 줍니다.

공장 표준화는 공장 사이에 생산을 옮길 수 있게 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입니다. 모든 공장을 똑같이 만들자는 뜻은 아닙니다. 핵심 공정과 데이터, 공정 단계마다 품질을 확인하는 기준(품질 관문), 작업 표준서, 금형·설비 방식, 성과 지표를 충분히 비슷하게 맞춰서, 다른 공장으로 생산을 옮길 때 공정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 필요가 없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공장 하나가 멈춰도 다른 공장이 받쳐 줄 수 있어 네트워크 전체가 튼튼해집니다. 대신 정해진 규칙을 지켜야 해서 현지 공장에서는 답답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표준화할 필요가 없는 것까지 맞추다가 현지 공장의 장점을 잃는 것도 흔한 실수입니다. 생산 이전과 품질, 관리에 꼭 필요한 부분만 맞추면 됩니다.

구성 유연 공장은 반대 방향의 접근입니다. 여러 공장이 같은 제품을 만들게 하는 대신, 특정 공장 하나가 여러 제품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죠. 이를 위해 유연한 설비와 교체가 쉬운 금형(모듈형 툴링), 숙련 작업자, 프로그램만 바꾸면 다른 작업을 하는 자동화 설비, 디지털 작업 지침, 체계적인 형상 관리가 필요합니다.

제품 종류가 많고 생산량을 예측하기 어렵거나 고객이 지역에 맞춘 제품을 원할 때 특히 쓸모가 큽니다. 다만 비용과 복잡성이 커지고, 규칙과 기준이 없으면 오히려 혼란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아웃소싱은 외부 제조업체에 생산을 맡기는 방법입니다. 공장과 설비를 직접 갖추지 않고도 생산 능력을 늘리거나, 새로운 지역에서 생산하거나, 특수 기술을 쓰거나, 갑자기 늘어난 수요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일시적일 때, 수요가 불확실할 때, 큰돈을 투자하기 전에 새 지역을 시험해 보고 싶을 때 유용합니다.

빠르고 선택지가 넓어지는 대신 직접 관리할 수 있는 범위는 줄어듭니다. 품질 데이터, 공정 노하우, 지식재산권, 생산 우선순위, 납기를 모두 꼼꼼히 관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위기가 닥친 뒤에 업체를 찾기보다 미리 준비해 둘 때 효과가 가장 큽니다.

현실에서는 대개 세 가지를 섞어서 씁니다.

방식잘 맞는 제품좋은 점조심할 점
공장 표준화수요가 안정적이고 물량이 많은 제품공장 사이에 생산을 쉽게 옮길 수 있음현지 공장의 답답함, 불필요한 것까지 맞추는 실수
구성 유연 공장종류가 많고 변동이 크거나 맞춤형인 제품한 공장에서 여러 제품을 빠르게 생산비용과 복잡성, 기준이 없으면 혼란
아웃소싱핵심이 아닌 부품, 넘치는 물량, 특정 지역 수요생산 능력을 빠르게 확보품질·노하우·지식재산권 등 관리 범위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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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중요한 것은 공장마다 역할을 분명히 정하는 일입니다. 한 공장에 가장 싸게 대량 생산하는 역할, 여러 제품을 유연하게 만드는 역할, 신제품을 처음 생산하는 역할, 서비스 부품을 공급하는 역할, 다른 공장이 멈췄을 때 대신 생산하는 역할까지 모두 맡기면 어딘가에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공장을 평가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공장을 ‘지금 만드는 제품을 얼마나 싸게 만드는가’로만 평가했다면, 이제는 전체 생산 네트워크의 한 축으로 봐야 합니다. 다른 공장의 생산을 넘겨받을 수 있는지, 대체 부품을 검증할 수 있는지, 공통 품질 기준을 지키는지, 다른 공장과 비슷한 작업 지침을 쓰는지, 믿을 수 있는 생산·품질 데이터를 내놓는지가 중요해집니다. 모든 공장이 똑같을 필요는 없지만, 서로 생산을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은 호환돼야 합니다.

태블릿 지도의 항로와 신호를 보내는 컨테이너선으로 표현한 해상 운송 화물 가시성

공급망 유연성을 실행하게 하는 설비·시스템·데이터

공장 사이에 생산을 주고받고 지금까지 살펴본 선택지들을 실제로 쓰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설비와 시스템이 있어야 합니다. 앞에서 본 툴링 부족이나 대체 부품 미등록처럼, 대안을 마련해 두고도 바로 쓰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는 곳도 바로 여기입니다.

먼저 설비를 고르는 기준이 바뀌어야 합니다. 상황이 안정적일 때는 정해진 제품을 가장 싸게 만들 수 있는 장비를 고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지만 불확실한 시기에는 다른 기준도 함께 봐야 합니다. 다른 제품으로 얼마나 빨리 전환할 수 있는지, 프로그램만 바꿔 다른 작업을 할 수 있는지, 부품을 고정하는 장치(지그)를 쉽게 바꿀 수 있는지, 생산 설정값(레시피)을 다른 공장으로 옮길 수 있는지, 예비 부품을 쉽게 구할 수 있는지, 원격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지, 다른 소재나 사양으로도 돌릴 수 있는지 등입니다.

한 제품만 만드는 전용 라인은 효율적이지만 위기 때는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여러 작업을 소화하는 작은 단위의 생산 라인(셀 라인), 교체가 쉬운 금형, 핵심 금형의 예비품, 공장마다 같은 제어 시스템은 평소에는 비싸 보여도 생산을 옮겨야 할 때 선택지가 됩니다.

생산 현장의 시스템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산을 관리하는 제조 실행 시스템(MES)과 품질·유지보수 시스템은 한 공장 안에서만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공장의 생산을 함께 관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제품을, 어느 공장에서, 어떤 부품으로, 어느 공급업체의 어떤 묶음(배치)으로, 어떤 설비에서, 어떤 시험 결과를 거쳐 만들었는지 추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기록은 번거로운 서류 작업이 아닙니다. 품질 문제가 생겼을 때 불필요하게 넓은 범위를 리콜하지 않고 문제가 된 제품만 골라낼 수 있습니다. 또 공급업체를 바꾸더라도 이미 판매한 장비를 계속 관리할 수 있습니다.

전사적 자원 관리(ERP)나 제품 수명주기 관리(PLM) 같은 회사 시스템도 같습니다. 유연성은 결국 시스템에 들어 있는 기준 정보(마스터 데이터)에 달려 있습니다. 대체 부품이 시스템에 등록돼 있어야 하고, 지역마다 다른 부품 구성표가 관리돼야 하며, 공정 정보는 각 공장의 실제 능력을 반영해야 합니다. 설계가 바뀌면 그 내용이 관련된 모든 공장과 문서, 공급업체, 서비스 조직에 빠짐없이 전달돼야 하고요. 많은 기업이 유연한 공급망을 원하지만, 정작 회사 시스템은 한 가지 방식으로만 돌아가도록 짜여 있습니다.

물류 관리 시스템도 화물 위치를 확인하는 데서 더 나아가 공급망 전체를 조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급업체, 운송 중인 화물, 공장 재고, 지역 물류 거점, 완제품 창고, 서비스 부품 창고까지 한눈에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부족한 부품을 어디에 먼저 보낼지 정하는 기준과 대체 운송 경로도 미리 준비해 둬야 합니다. 한 지역의 공장이 멈추거나, 어떤 나라가 새로 관세를 매기거나, 특정 운송 경로가 불안정해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미리 시뮬레이션해 볼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여기서 운송 중인 화물은 제조업체가 직접 챙겨야 할 재고이기도 합니다. 해외에서 부품을 들여오는 제조업체라면 재고의 일부는 늘 바다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공장 창고에 있는 재고는 바로 확인할 수 있지만, 바다 위에 있는 부품은 따로 챙기지 않으면 지금 어디쯤 있는지, 언제 도착할지 알기 어렵습니다.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먼저 따져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지금 가진 재고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입니다. 그런데 바다 위의 부품이 언제 도착할지 모르면 이 계산부터 어긋납니다. 항로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화물이 영향을 받는지 모르면 대체 경로를 쓸지도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도착이 늦어진다는 사실을 일찍 알수록 다른 공급처나 운송 경로로 옮겨 갈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트레드링스 Ocean Visibility처럼 해상 운송 구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솔루션을 활용하면, 여러 선사에 흩어진 컨테이너 화물을 한 번에 모니터링하고 ETA 변경이나 지연 알림을 미리 받아볼 수 있습니다. 화물이 도착한 뒤에 생길 수 있는 비용도 함께 관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컨테이너를 무료 기간(Free Time)보다 오래 터미널에 두면 디머리지(Demurrage), 반출한 컨테이너를 무료 기간 안에 반납하지 않으면 디텐션(Detention)이라는 추가 비용이 붙는데, 이런 솔루션은 컨테이너가 터미널에 머문 기간과 반출 후 반납하기까지의 기간을 실시간으로 확인해, 무료 기간을 넘길 위험이 있는 화물을 미리 골라내 줍니다. 공급망 전체를 조율하는 데 필요한 운송 구간의 정보를 놓치지 않게 되는 것이죠.

공장, 트럭, 선박, 상자, 동전을 잇는 나침반으로 표현한 공급망 회복탄력성을 위한 경영진의 판단 기준

공급망 회복탄력성을 위해 경영진이 정해야 할 것

앞에서 살펴본 준비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급처를 하나 더 검증하는 일도, 대체 부품을 받아들이도록 제품을 설계하는 일도, 생산을 옮길 수 있게 공장과 설비를 맞추는 일도 당장의 비용을 늘리고 효율을 조금씩 떨어뜨린다는 점입니다. 평소의 원가와 가동률만 보면 손해처럼 보이기 쉽죠.

그래서 이런 결정은 구매나 생산 부서에만 맡겨 두면 좀처럼 내려지지 않습니다. 각 부서는 자기 부서의 성과 기준에 맞춰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경영진이 나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경영진이 할 일은 현장의 작업을 하나하나 지시하는 것보다 판단 기준을 정하는 것입니다. 위험을 어디까지 감수할지, 어떤 제품과 고객을 가장 먼저 지킬지, 당장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해야 할 투자는 무엇인지가 그 기준입니다.

평가 기준도 함께 바꿔야 합니다. 공장장은 가동률로만, 구매 부서는 구매 가격으로만, 엔지니어링 부서는 제품 원가와 출시 일정으로만 평가받는 회사를 떠올려 보면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이런 회사에서 다른 공장의 물량을 받아 줄 여유 설비는 공장장에게 가동률을 떨어뜨리는 부담입니다. 가격이 더 비싼 두 번째 공급업체는 구매 부서에게 구매 가격을 올리는 요인이고, 대체 부품까지 쓸 수 있게 하는 설계는 엔지니어링 부서에게 원가와 일정을 늘리는 일입니다. 각 부서가 자기 기준에 맞춰 열심히 일할수록 회사 전체는 유연성에 대한 투자를 미루게 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부서별 비용 성과만 보는 대신, 회사 전체 공급망이 위기에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평가하고 보상하는 지표(KPI)와 인센티브가 필요합니다.

부서끼리 대화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도 경영진의 몫입니다. 공급망 리스크는 한 부서에서 모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매 부서는 공급업체 뒤에 숨은 하위 공급업체 의존도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 공급업체가 결국 같은 곳에서 부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여기서 드러나죠. 엔지니어링 부서는 대체 부품을 쓸 수 있는 설계로 그 공급처를 실제로 쓸 수 있게 만들고, 생산 부서는 각 공장이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 생산을 넘겨받을 준비가 됐는지를 파악합니다. 물류 부서는 운송 중인 화물과 대체 운송 경로를 챙기고, 재무 부서는 위험까지 반영한 비용을 계산해 지역화 같은 투자가 타당한지 판단합니다.

제품 기획 부서는 제품 수명과 이미 판매한 장비에 얽힌 위험을, 서비스 부서는 현장에서 부품이 부족할 때 고객에게 어떤 피해가 생기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어느 부서도 혼자서는 전체 그림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정보를 한자리에 모으는 일이 경영진의 역할입니다.

뛰어난 리더는 이 대화를 단순한 질문으로 이끕니다. “가장 싼 공급망은 무엇인가?”에서 멈추지 않고 “문제가 생기면 우리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는가?”, “그 선택지를 쓰지 못하게 막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특히 마지막 질문이 중요합니다. 서두의 사례처럼 선택지가 있어도, 이를 가로막는 문제를 미리 찾아내지 않으면 위기 때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을 던지면 숨어 있던 문제들이 드러납니다. 생산을 옮길 공장에 필요한 금형이 없거나, 대체 공정이 검증되지 않았거나, 대체 부품이 시스템에 등록돼 있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문서로 정리되지 않은 현장만의 작업 방식 때문에 다른 공장이 따라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위 부품 하나를 한 곳에서만 사고 있거나, 필요한 시험 장비가 없거나, 공급업체 정보가 불투명하거나, 위기 때 누가 결정할지 정해져 있지 않은 것도 같은 종류의 문제입니다.

실행은 가장 중요한 제품군과 핵심 부품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모든 제품을 한꺼번에 점검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경영진은 제품과 부품별로 아래 네 가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확인할 질문구체적으로 볼 항목
어디에 얼마나 기대고 있는가나라별·공급업체별·하위 공급업체별 의존도
옮겨 갈 곳이 실제로 준비돼 있는가검증을 마친 대체 공급처와 대체 부품, 금형이 있는 위치, 공장별 생산 능력
옮겨 가는 동안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운송 중인 재고를 포함해 지금 재고로 버틸 수 있는 기간, 쓸 수 있는 운송 경로
멈추면 무엇을 잃는가위험에 노출된 매출 규모, 이미 판매한 장비에 미칠 영향
Tradlinx

점검 결과를 위험한 곳을 색으로 표시한 표(히트맵)로 정리하는 데서 끝내서는 안 됩니다. 히트맵은 어디가 위험한지만 보여 줄 뿐,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점검이 끝나면 제품과 부품마다 구체적인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이때 고를 수 있는 결정은 앞에서 살펴본 방법과 그대로 이어집니다. 공급업체를 두 곳으로 늘리거나(이원화), 지역화하거나, 핵심 부품만 본국으로 가져오는 식으로 조달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제품을 다시 설계하거나 재고를 쌓을 수도 있고, 공장 표준화나 구성 유연 공장 확대, 아웃소싱처럼 공장 네트워크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지금 상태를 유지하거나 위험을 그대로 감수하기로 하는 것도 하나의 결정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결정을 의식적으로 내렸느냐입니다. 이렇게 내린 결정들이 쌓여서 위기 때 실제로 꺼내 쓸 수 있는 선택지가 됩니다.

폭풍과 바위로 막힌 항로를 피해 다른 경로로 공장에 도착하는 선박으로 표현한 공급망 유연성

공급망 유연성이 경쟁력이 되는 이유

물론 이렇게 준비해도 위험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위험이 전혀 없는 공급망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급망 회복탄력성의 목표는 위험을 없애는 것보다, 위험이 미리 보이고 대응할 선택지가 준비돼 있어서 공급망 문제가 고객의 피해로 번지기 전에 먼저 움직일 수 있는 공급망을 만드는 것입니다.

서두의 세 기업도 대체 공급처나 대비책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흔들린 것은 그 선택지를 위기 순간에 바로 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급망 유연성은 선택지를 갖고 있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선택지를 실제로 쓸 수 있게 준비해 둘 때 생깁니다.

이 차이는 위기가 왔을 때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같은 위기를 맞아도 바로 쓸 수 있는 선택지가 있는 기업은 다른 공급처나 공장, 운송 경로로 옮겨 가며 고객에게 제품을 계속 공급할 수 있습니다. 같은 넥스페리아 사태에서도 폭스바겐(Volkswagen)은 다른 공급업체에서 칩을 구해 독일 공장의 생산 중단을 피했습니다. 반면 바로 쓸 수 있는 선택지가 없는 기업은 대안을 찾는 동안 생산과 납품이 멈출 수 있습니다. 국제 정세가 불안정해 이런 위기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지금, 공급망 유연성이 있으면 좋은 정도의 장점이라기보다 그 자체로 기업의 경쟁력이 되는 이유입니다.

유연성을 갖춘 기업도 공급망 위기는 계속 겪을 것입니다. 다만 훨씬 넓은 대응 여지를 갖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준비하지 않은 기업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자신들의 공급망이 세상이 예측대로 움직일 때만 효율적이었다는 사실을 거듭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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