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화재 200⬆️, 해운업계가 ‘100Wh 면제 규정’을 손보려는 이유

2026년, 8월 27일

안녕하세요. 물류의 새로운 기준, 트레드링스입니다.

지금도 노트북 수백 대가 들어찬 컨테이너 한 대가 어딘가의 컨테이너선에 올라가고 있습니다. 위험물로 신고되지 않았으니 그 배의 선장은 불이 날 수 있는 화물이 실렸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출항하죠. 그렇다고 누가 규정을 어긴 것도 아닙니다. 현행 규정이 신고하지 않아도 되는 길을 열어 두었으니까요.

최근 해운업계는 이 면제 조항이 한번 붙으면 며칠씩 꺼지지 않는 선박 화재의 위험을 키워 왔다며, 해운 규제를 담당하는 국제해사기구(IMO)에 규정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신고 대상에서 무엇이 빠져 있길래 선장조차 위험을 파악할 수 없는 걸까요.

노트북과 보조배터리는 왜 위험물이 아닌가

현행 IMDG 코드의 특별규정 SP188은 일정 조건을 갖춘 소형 배터리에 위험물 규정의 일부를 면제해 줍니다. 리튬이온 배터리라면 한 개의 용량이 100와트시(Wh) 이하여야 한다는 것이 그 조건 가운데 하나죠. 노트북이나 보조배터리가 대체로 여기에 들어갑니다. 다만 용량이 낮다고 자동으로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UN 38.3 시험 통과와 단락 방지, 포장, 표시까지 SP188이 정한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비로소 이 화물을 위험물로 신고하지 않고 실을 수 있습니다.

컨테이너 선사들이 IMO를 압박하는 대목이 바로 이 조항입니다. 선사 임원들은 이 면제 탓에 소비자 전자제품 수백 개가 들어찬 컨테이너가 배에 실려도 선장이 잠재적인 화재 위험을 알아차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시험도 거치고 표시도 붙인다는데 선장은 왜 모른다는 걸까요.

그 정보들이 향하는 곳이 선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UN 38.3 시험 성적서는 제조사와 화주 쪽에 남고, 리튬 배터리 마크는 포장 겉면에 붙으니 컨테이너 문이 닫히는 순간 밖에서 보이지 않게 됩니다. 선사에 따라 부킹 과정에서 MSDS(물질안전보건자료)나 시험 자료를 추가로 받아 두기도 하지만, 이건 선사가 자체적으로 만든 절차일 뿐 규정이 요구하는 것은 아니고요.

선장이 보는 문서는 따로 있습니다. SOLAS 협약은 포장 위험물을 싣는 선박에 선내 위험물의 종류와 위치를 적은 목록이나 적하목록을 갖추도록 요구하고, 위험물의 위치를 표시한 상세 적재 계획으로 이를 대신하는 것도 허용합니다. 이 문서는 화주가 제출한 위험물 운송 서류를 근거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SP188 면제 화물은 그 서류를 작성하지 않습니다. 컨테이너 자체는 적하목록에 정상적으로 오르지만, 선장이 보는 위험물 목록에는 이름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신고만 됐다면 적재 방식부터 달랐을 화물

덴마크 선사 머스크(Maersk)의 위험물 정책 담당자 마르쿠스 외텐블라드(Marcus Örtenblad)는 “운항상 영향이 상당하다”고 말했습니다. 위험물로 분류된 컨테이너에는 엄격한 적재 요건이 따라붙기 때문입니다. 갑판 위에 실을지 갑판 아래에 실을지, 다른 화물과 어떻게 격리할지, 비상시 승무원이 얼마나 빨리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지가 모두 정해집니다. 신고가 없으면 이 요건은 처음부터 적용되지 않습니다.

문제를 키우는 것은 100Wh 기준이 컨테이너 전체가 아니라 배터리 한 개에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SP188에는 포장 방식이나 중량에 관한 조건이 따로 있지만, 컨테이너 한 대에 실린 배터리의 총 저장에너지를 얼마 이하로 묶는 기준은 없습니다.

해운업계 단체인 세계해운협의회(WSC)의 조 크라멕(Joe Kramek) 최고경영자는 SP188이 본래 소형 배터리 운송을 간소화하려고 만들어졌다고 설명하면서도, 면제를 받아 실린 화물 가운데 전기차 배터리 4개를 합친 것보다 많은 전기를 저장한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크라멕 CEO는 “이 면제 규정으로 운송된 배터리가 심각한 컨테이너 화재를 일으켜 사람과 항만, 선박, 해양환경을 위험에 빠뜨렸다”고 경고했습니다.

배터리 6배, 그리고 200건 넘은 선박 화재

크라멕 CEO의 경고는 통계로도 뒷받침됩니다. 전 세계 에너지 시스템이 전기 중심으로 옮겨 가면서 배터리 사용량이 빠르게 불어났고, 그만큼 화재 문제도 업계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리튬이온 배터리 보급량은 2020년의 6배 수준이며, 배터리 수요는 2030년까지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 보험사 알리안츠(Allianz)는 2025년 선박 화재 사고가 200건 넘게 보고됐다고 밝혔습니다. 2024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수치입니다.

알리안츠는 이 가운데 상당수가 표기되지 않았거나 위험물로 정확히 신고되지 않은 리튬이온 배터리가 연소하면서 발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이 수치가 SP188 면제 화물에서 난 화재를 따로 집계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배터리 화물의 정보가 선박까지 닿지 않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충분히 보여주죠.

한 번 붙으면 42시간, 끌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건수도 문제지만,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는 좀처럼 꺼지지 않는다는 점이 더 곤란합니다. 열폭주 때문입니다.

배터리가 손상되면 스스로 열을 내며 타기 시작하고, 그 열이 다시 손상을 키우는 고리가 생깁니다. 지금으로서는 이를 진화할 마땅한 수단이 거의 없습니다.

2020년 컨테이너선 엑스프레스 고다바리(X Press Godavari)에서 발생한 화재가 그 전형입니다. 당시 리튬이온 배터리 500팩 이상과 충전식 손전등 배터리 600개 가까이가 실린 컨테이너에서 불이 났고, 진화까지 최대 42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시 안전조사 보고서는 배터리 하나만 발화했더라도 컨테이너 안에서 불이 번져 나머지 화물을 태우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고 결론지었는데요, 보고서는 배터리가 30도를 넘는 온도에 오랜 기간 노출된 것을 원인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기온이 오르는 만큼 이 문제를 다루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9월 IMO 회의 테이블에 오른 공동 제안

엑스프레스 고다바리 사고는 이번 규제 논의에서 다시 등장했습니다. 해운업계 단체들과 독일, 네덜란드, 싱가포르, 태국, 마셜제도는 9월 중순 열리는 IMO 화물·컨테이너 운송 소위원회(CCC) 회의를 앞두고 공동 문서를 제출하면서, 이 사고를 소형 리튬이온 배터리가 배 위에서 불을 낸 전형적인 사례로 지목했죠.

해상보험사 노스스탠다드(NorthStandard)의 손실예방 총괄 콜린 길레스피(Colin Gillespie)는 배터리 운송량이 늘어날수록 “미신고 또는 면제 배터리 화물이 만들어 내는 운항상 사각지대”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으며, 위험이 커지는 속도와 규모를 규제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규정이 바뀌기 전까지, 실무에서 붙잡아야 할 것

규정 개정에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사이에도 배터리를 실은 배는 계속 오갑니다. 엑스프레스 고다바리처럼 화재가 길게 이어지면 그 배의 일정은 무너지고, 후속 기항지와 환적 연결까지 차례로 밀리게 됩니다.

이럴 때 선적 당시 받아 둔 최초 스케줄은 더 이상 판단 근거가 되지 못하죠. 배가 지금 어디에 있고 도착 예정 시점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계속 따라가야 하니까요.

트레드링스 Ocean Visibility는 여러 선사에 나뉘어 실린 화물을 한곳에서 모아 보여주고, 운항 중 발생하는 스케줄 변동과 ETA 변화를 함께 확인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면제 규정을 어디까지 손볼지는 9월 회의 이후에 윤곽이 잡히겠지만, 내 화물이 실린 배에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은 화주와 포워더가 당장 실행할 수 있는 대응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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