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AI 반도체’ 수출통제에 중국 ‘원자재 카드’로 맞받아쳐…글로벌 공급망 대혼란 예고
안녕하세요. 물류가 쉬워지는 공간, 트레드링스 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무역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미국이 중국의 AI 발전을 저지하기 위해 핵심 반도체 수출을 차단하자, 중국은 단 하루 만에 ‘원자재 무기화’라는 강력한 카드로 맞받아쳤습니다.
세계 경제의 두 거인이 벌이는 이 전면전이 글로벌 공급망 시장에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까요?
미국의 대중국 제재 조치와 그 의도
2024년 12월 2일, 미국이 중국의 AI 산업을 정면으로 겨냥한 새로운 무기를 꺼내들었습니다.
바로 고대역폭메모리(High Bandwidth Memory, HBM) 수출을 전면 통제하겠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관보를 통해 발표한 이 조치는 중국의 AI 발전을 강력하게 제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HBM을 수출 통제 물품으로 지정한 것일까요?
이는 HBM이 AI개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이때 일반 메모리로는 AI가 요구하는 빠른 데이터 처리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운데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HBM입니다.
HBM은 마치 고층 아파트처럼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올린 특별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살 수 있게 해주는 고층 아파트처럼, 작은 공간에서도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게 해줍니다. 덕분에 AI 시스템은 초당 수천 테라바이트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게 되죠.

미국의 이번 제재는 상당히 촘촘하게 설계됐습니다.
메모리 대역폭 밀도가 평방밀리미터당 초당 2기가바이트를 넘는 모든 HBM의 수출을 금지했는데, 미국 상무부는 “현재 생산되는 모든 HBM이 이 기준을 초과한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 더해 반도체 제조장비 24종과 소프트웨어 도구 3종도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시켰습니다.
더욱 강력한 것은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의 적용입니다.
HBM 생산에는 ‘미국산 기술’이 꼭 필요합니다.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제조 장비, 특정 기술 등 미국이 보유한 핵심 기술들이 HBM을 만드는 과정에 반드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FDPR은 바로 이 점을 노린 규제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가 HBM을 생산할 때도 미국의 기술이나 장비를 사용합니다. FDPR에 따르면 이렇게 만들어진 HBM은 ‘미국 기술이 들어간 제품’으로 간주되어 대중국 수출이 제한됩니다.
쉽게 말해, 미국은 “우리 기술로 만든 제품은 어느 회사가 만들었든 중국에 팔 수 없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현재 세계의 모든 HBM 생산에 미국 기술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 규제는 사실상 중국의 HBM 확보를 전방위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가지게 된 것이죠.
한편 미국 상무부는 해당 조치를 발표하면서 그 목적도 분명히 했습니다. “중국이 차세대 고급 무기 체계와 인공지능, 고성능 컴퓨팅에 사용될 수 있는 첨단 반도체의 생산능력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명시한 것이죠. 이는 AI 기술이 단순한 산업 경쟁을 넘어 국가 안보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중국의 전략적 반격
중국의 대응은 신속했습니다.
미국의 발표 하루 만인 12월 3일, 중국 상무부는 자국의 ‘수출통제법’을 근거로 핵심 광물 수출 제한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갈륨, 게르마늄, 안티몬, 초경질 물질의 대미 수출을 전면 금지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럼 중국은 왜 이러한 물질을 무기로 선택한 것일까요?
미 지질조사국(USGS)의 데이터를 보면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은 첨단 산업에 필수적인 광물들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 이트륨(Yttrium): 미국 수입의 94%를 중국이 차지, 촉매제와 마이크로웨이브 필터 제조에 필수
- 희토류 화합물과 금속: 74% 차지, 스마트폰과 카메라 제조의 핵심 소재
- 비스무스: 65% 차지, 금속공학 분야에 활용
- 안티몬: 63% 차지, 배터리 제조에 필수
- 게르마늄: 54% 차지, 연간 29,000톤 규모로 광섬유와 반도체 제조에 핵심
- 갈륨: 53% 차지, 연간 12,000톤 수준으로 반도체와 통신장비 제조에 필수
더욱 주목할 점은 중국이 이들 광물의 글로벌 생산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023년 기준으로 중국은 전 세계 정제 갈륨 생산량의 98%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게르마늄 역시 세계 생산량의 59.2%를 중국이 책임지고 있으며, 안티몬도 세계 채굴량의 48%가 중국에서 나옵니다. 이는 중국이 이들 광물의 공급을 조절함으로써 글로벌 공급망을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지렛대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번 조치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중국의 태도 변화입니다.
중국은 작년 8월 갈륨·게르마늄을, 12월에는 흑연을 수출 통제 대상에 넣었을 때는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중국 상무부가 발표한 공고문에는 ‘미국’이라는 단어가 제목을 포함해 6차례나 등장했습니다. 이는 중국이 이번 조치를 명백한 대미 보복으로 규정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미국의 HBM 수출 통제에 대한 중국의 대응이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정면 대결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양국의 입장과 주장
이번 무역 전쟁에서 양국은 서로를 비난하며 자국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번 조치가 단순한 무역 규제가 아닌 국가 안보의 문제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백악관 대변인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으로부터의 주요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동맹국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행동이 세계 무역 질서를 훼손하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중국 상무부는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이 국가안보의 개념을 일반화하고, 경제, 무역, 기술 문제를 정치화하고 무기화하며, 수출통제 조치를 남용했다”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다수의 중국 기업을 억압 및 봉쇄 제재 명단에 포함해 국제 무역 규칙을 심각하게 훼손했으며, 기업의 합법적이고 합법적인 권익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대화의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습니다. 중국 상무부는 “수출 통제 분야에서 관련국들과 대화를 강화하고 글로벌 산업 및 공급망의 안정성을 함께 추진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완전한 대립보다는 협상을 통한 해결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한국 기업들에 대한 영향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대부분의 HBM을 미국 엔비디아에 공급하고 있어 직접적인 영향이 제한적입니다. 삼성전자의 경우도 중국향 HBM 수출 비중이 크지 않아 타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더욱이 양사 모두 미국으로부터 VEU(검증된 최종 사용자)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이는 이번 추가 조치와 관계없이 미국 정부의 개별 허가 없이도 관련 장비를 계속 반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이런 상황을 감안해 “이번 조치가 국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향후 전망
미중 갈등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차기 미국 행정부가 중국산 수입품에 최대 60%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처럼, 오히려 갈등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AI와 반도체를 둘러싼 기술 패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완전한 디커플링(경제적 분리)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이 광물 자원 공급을, 미국이 첨단 기술을 각각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 쪽도 완전한 승리를 거두기는 힘들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대화 가능성을 열어둔 것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