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 업무가 쉬워지는 곳, 트레드링스입니다.
수출입 담당자분들이라면 요새 정신이 없으시죠? 하루가 멀다하고 바뀌는 미국의 관세 정책 때문인데요.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 불가능한 관세 정책은 우리 뿐만 아니라 많은 미국 수입업자들의 밤잠까지 설치게 만드는 고민거리입니다. 그런데 이런 혼란 속에서 뜻밖의 ‘전성기’를 맞이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보세창고(Customs Bonded Warehouse)’입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관세 납부 최대 5년 유예? 보세창고란?
미국 보세창고는 쉽게 말해 ‘관세 납부 대기소’ 같은 곳입니다. 수입된 상품을 미국 땅에 들여놓고도, 최대 5년까지 관세 납부를 ‘잠시 멈춤’ 할 수 있는, 세관의 승인을 받은 특별한 창고죠. 상품이 최종적으로 미국 내 소비자에게 판매되기 위해 창고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비로소 멈춰 있던 ‘관세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에 보세창고는 오랫동안 미국 수입 업자들에게 재정적 유연성을 제공하는 조력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수요 6배 폭증! 트럼프 관세가 불 지핀 보세창고 인기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거나 예고하면서, 보세창고의 ‘몸값’이 갑자기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시애틀의 물류 스타트업 Flexe의 공동 창업자 칼 지브레히트에 따르면, 보세창고 공간 문의가 무려 6배나 폭증했다고 하니 그 열기를 짐작할 만합니다.
뉴저지에서 약 6,200평 규모의 보세창고를 운영하는 Accem Warehouse의 사장 제리 메카는 “관세 발표 후 배가 들어오기도 전부터 전화벨이 미친 듯이 울렸다”며 당시의 ‘패닉 바잉’에 가까운 상황을 전했습니다. 특히 미국 서부의 관문인 LA/롱비치 항만청장 진 세로카가 “항만을 통과하는 물동량의 약 40%가 중국에서 온다”고 언급했듯이, 대중국 관세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항만 인근 보세창고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단순 보관이 아닌 전략적 선택: 미국 수입업계의 보세창고 활용법
그렇다면 미국 수입업자들은 왜 이렇게 보세창고로 몰려들었을까요? 보스턴 소재 Momentum Commerce의 CEO 존 시어는 “정책, 수요, 마진 압박이 어떻게 안정될지 지켜볼 시간을 벌려는 것(buying time)”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관세 폭탄을 피할 시간을 벌어야 했던 거죠. 또한 다음과 같은 보세창고의 매력이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첫째, 관세 변동성 헤지입니다. 혹시 관세가 내려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기다리거나, 반대로 관세가 더 오르기 전에 일단 상품을 미국 내로 옮겨놓고 납부는 미루는 전략적 판단이 가능해집니다.
둘째, 현금 흐름 관리입니다. 연간 1억 달러 이상 인조 크리스마스 트리를 판매하는 한 수입업체가 Flexe를 통해 보세창고를 이용한 사례처럼, 막대한 관세를 당장 내지 않고 판매 시즌까지 미룸으로써 현금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셋째, 전략적 옵션 확보입니다. LA 소재 물류업체 Warp의 트로이 레스터 공동 창업자는 보세창고가 “현금 흐름과 통제를 위한 지렛대”가 된다고 강조합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보관 중인 상품을 관세 없이 캐나다 등 제3국으로 재수출할 수도 있다는 유연성도 큰 장점입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비용? 보세창고 활용의 현실적 과제
하지만 그만큼 대가도 따랐습니다. 보세창고는 원래도 규제가 많고 통관 절차가 복잡해 일반 창고보다 비쌌는데, 수요가 폭증하면서 일반 창고 공간보다 최대 60% 더 비싼 몸값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 비용을 감수하고 있습니다. 수입업자들은 ‘비싼 보세창고 비용 vs 당장의 고율 관세’라는 어려운 저울질을 해야 했지만, 많은 경우 전자를 택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최근 미국 보세창고의 인기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파도 속에서 미국 수입업계가 찾아낸 나름의 생존 전략이자 ‘묘수 찾기’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불안정한 통상 환경에서 기업들이 어떻게 기존 제도를 활용해 위험을 관리하고 기회를 모색하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단면이며, 미국 시장과 관련된 수출입 업무에 종사하는 분들이라면 주의 깊게 살펴볼 만한 소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