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 업무가 쉬워지는 곳, 트레드링스입니다.
지난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로 정부24를 포함한 647개 정부 시스템이 멈춰서면서, 수출입 현장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화주부터 운송사까지, 이번 전산망 마비 사태가 각 실무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세워 살펴보겠습니다.
천만다행, 핵심 시스템 ‘유니패스’는 건재하다
다행히도 수출입 통관 업무의 핵심인 관세청 전자통관시스템 ‘유니패스(UNI-PASS)’는 이번 화재의 직접적인 영향권에서 벗어났습니다. 유니패스는 130여 개 기관과 26만 개 업체가 연계된 우리나라 물류·무역의 핵심 시스템입니다. 이번 사태에서 유니패스가 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서버의 물리적 위치 덕분입니다. 화재가 발생한 대전센터가 아닌 광주 국가정보자원관리센터에 별도의 서버망을 두고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부는 9월 29일 오전, 관세청 빅데이터 포털(대민), 빅데이터 포털(내부행정) 등도 복구를 완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안도하기는 이릅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통관 업무와 긴밀하게 연결된 다른 정부 부처의 전산망이 마비되면서, 보이지 않는 문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1. 화주(수출입 기업)
수출입의 주체인 화주는 이번 사태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통관 절차는 정상 가동되는 듯하지만, 행정 및 금융 프로세스에 연쇄적인 차질이 생길 수 있습니다.
- 관세 납부 지연 : 가장 큰 문제는 관세 납부입니다. 인터넷 뱅킹 등 금융 시스템 일부가 장애를 일으키면서 세금 납부가 지연될 수 있습니다. 납부가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수입 물품 반출이 불가능해집니다. 이는 결국 전체 통관 일정을 꼬이게 만들어 생산 및 판매 계획에 차질을 초래하는 ‘나비효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인허가 지연 : 산업통상자원부의 전략물자관리시스템을 포함한 21개 시스템이 멈춰 섰습니다. 정부는 수기 접수로 전환했지만, 이는 곧 처리 시간의 급격한 증가를 의미합니다. 당장 선적해야 할 샘플이나 시급한 화물이 서류 문제로 발이 묶이는 상황입니다.
- 공공조달 계약 ‘올스톱’: 조달청 ‘나라장터’ 시스템 마비로 공공기관 납품 계약도 멈췄습니다. B2G(기업-정부 간 거래)를 주력으로 하는 기업들은 입찰, 계약, 대금 수령 등 전 과정에서 지연을 겪으며 현금 흐름에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2. 포워더
화주와 운송 주체 사이의 ‘허리’ 역할을 하는 포워더 전후방에서 터져 나오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조율해야 하는 압박이 거세질 수 있습니다.
- 간헐적 시스템 장애와 업무 과부하: 유니패스는 정상 작동하지만, 연계된 일부 부가 서비스나 납부 경로에서 간헐적 장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선적신고나 적하목록 정정 등 일상적인 업무 처리 시간을 지연시키고, 담당자의 업무 부담을 가중시킵니다.
- 고객 커뮤니케이션 폭증: 화주들로부터 스케줄 변경, 지연 사유 등을 묻는 문의가 늘어날 수 있습니다. 정확한 상황 파악과 신속한 대응이 어려운 상황에서 운송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한 압박을 받습니다.

3. 선사/해운사
선사와 해운사는 터미널 현장과 행정 절차 사이의 엇박자로 인한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 터미널 혼잡 리스크 확대: 터미널 게이트 반출입 자체는 현장 시스템 중심으로 운영되므로 직접적인 영향은 적습니다. 하지만 관세 납부 지연 등으로 화물의 반출이 보류되면, 장치장(CY)에 컨테이너가 쌓이면서 터미널 전체의 혼잡도가 급격히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는 연쇄적인 체선(체류)으로 이어져 운항 스케줄 전반을 꼬이게 만들 수 있습니다.
4. 관세사(통관사)
통관 절차의 최전선에 있는 관세사들은 자금 흐름과 행정 절차의 이중고를 겪을 수 있습니다.
- 자금 흐름의 병목: 전자납부, 환급, 분할납부 등 회계 및 수납 시스템의 지연은 관세사의 자금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신고-납부-반출로 이어지는 통관의 핵심 사이클에 병목이 발생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체 납부 경로를 찾는 등 추가적인 행정 부담이 발생합니다.
- 수기 업무의 부활: 특히 전략물자 수출이나 원산지 증명 관련 업무가 수기 접수로 전환되면서, 관련 부처와의 직접적인 소통과 서류 처리 업무가 늘어납니다. 이는 업무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서류 누락 등의 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입니다.
5. 운송사(내륙운송/창고):
최종 단계인 내륙 운송과 창고업체들은 통관 지연의 여파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 있습니다.
- 비효율적인 차량 운영: 통관 완료 통보가 지연되면서 트럭 기사들의 터미널 대기 시간이 늘어납니다. 이는 픽업 및 배송 스케줄의 전면적인 재조정으로 이어지고, 결국 트럭의 공차 회전율을 떨어뜨려 운송사의 수익성 악화로 직결됩니다.
- 분쟁 가능성 증가: 터미널 대기시간 증가는 운송사와 화주 간 운임 클레임이나 패널티 분쟁으로 번질 수 있는 잠재적 요인입니다.

이번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는 지정학적 리스크나 예측 가능한 시장 변동과는 결이 다른, 지극히 이례적인 시스템 장애입니다. 수출입 실무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유연한 업무 재조정입니다. 오늘 어떤 시스템이 복구되었는지, 내가 이용하는 금융망의 납부 기능은 정상화되었는지, 협력사가 겪는 어려움은 없는지 끊임없이 확인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분간 기존에 자동 처리되던 프로세스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수기로 접수한 서류가 제대로 처리되고 있는지 꼼꼼히 챙기며, 파트너사와의 소통 빈도를 높여 운송 일정을 미세 조정하는 등 업무의 디테일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리스크 관리 방식으로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