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물류의 새로운 기준, 트레드링스입니다.
지금까지 공급망(Supply Chain) 관리를 고민해 온 기업에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늘 같았습니다. ‘효율성’, ‘비용 절감’,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어지는 이윤(Profit). 더 싸고, 더 빠르게, 더 많이 만들어 더 멀리 보내는 것.
이 단순한 공식을 얼마나 잘 실행하느냐가 곧 기업 경쟁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공식은 눈앞에서 완전히 뒤집히고 있습니다. 이제 기업은 단순히 이윤 극대화만을 향해 달릴 수 없습니다. 국제 질서가 흔들리고, 각국 정부가 공급망을 ‘전략 자산’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지정학적 요소가 이윤보다 더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비즈니스의 논리가 아니라 복잡하게 얽힌 국제 정세가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의 무대가 열린 것이죠.
오늘 트레드링스는 이 새로운 현실 속에서 기업이 마주한 냉혹한 환경과,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생존 전략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1. 공급망, 기업의 손을 떠나 지정학의 ‘전쟁터’가 되다
과거 공급망은 철저히 기업의 영역이었습니다. 기업은 더 빠른 혁신과 더 짧은 리드타임을 만들기 위해 공급망을 직접 설계하고, 필요에 따라 구조를 바꾸고, IT 시스템을 도입하며 성능을 끌어올렸습니다. 위험이 있어도, 그 위험은 대개 수요 예측 실패, 원자재 가격 변동, 운임 상승 같은 ‘관리 가능한 비즈니스 리스크’의 차원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사이, 이 구조는 180도 달라졌습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단순한 변수나 경영 리스크를 넘어, 비즈니스를 통째로 흔드는 가장 강력한 힘으로 부상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공급망은 더 이상 기업 혼자 설계하고 최적화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국가와 국가가 충돌하고, 동맹이 재편되며, 제재와 보복이 오가는 ‘전쟁터’의 한복판으로 이동했습니다.
그 변화는 누구보다도 먼저 공급망의 통제권에서 드러납니다. 과거에는 기업이 비용과 효율을 기준으로 조달·생산·물류를 조정했다면, 지금은 각국 정부가 ‘국가 안보’와 ‘경제 안보’를 이유로 핵심 공급망에 직접 개입하며 사실상의 최종 결정권자로 나서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바로 최근 발생한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넥스페리아(Nexperia)’ 사태입니다.
2025년 10월 말, 네덜란드 정부는 중국계 자본이 소유한 넥스페리아가 자국의 전략 산업과 기술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핵심 의사결정 권한을 직접 행사할 수 있는 조치를 발동했습니다. 명목상으로는 회사의 소유권을 모두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경영진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수준의 통제력을 확보한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응은 신속하고도 강경했습니다. 중국 상무부는 불과 수일 내에 넥스페리아 중국 법인과 그 협력사의 반도체 제품에 대해 대외 수출을 사실상 중단하는 통제 조치를 발표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인해, 반도체의 흐름이 막히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습니다. 바로 넥스페리아 부품에 의존해 온 EU의 자동차 제조사들이었습니다. 완성차에 들어가는 특정 칩 공급이 멈추면서, 유럽 주요 공장들이 라인 중단 위기에 내몰린 것입니다.
결국 네덜란드와 중국이라는 두 국가의 자존심 싸움이 전 세계 자동차 공급망을 하루아침에 ‘인질’로 만들어 버린 셈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기업이 아무리 재고를 탄탄히 쌓아 두고, 공급선 다변화를 추진해도, 정부의 지정학적 결정 한 번이면 생산 라인이 멈출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문제는 단지 생산이 멈추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정부의 통제와 개입은 점점 upstream, 즉 원자재 구매 단계로까지 깊숙이 파고들고 있습니다.
이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미국·일본·인도·호주 4개국 안보 협의체 ‘쿼드(Quad)’의 움직임입니다.
이들은 중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 위해, 백신·희토류·반도체·배터리와 같은 전략 품목의 공급망을 자국과 우방 중심의 블록(Block) 구조로 재편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누가 더 싸게 파는가”가 아니라 “누가 우리 편인가, 어느 진영의 기술과 자원을 쓸 것인가”가 핵심 질문이 된 것입니다.
이제 기업의 원자재 구매 방식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가격’과 ‘품질’만 따져 구매했다면, 지금은 반드시 “이 자원은 어느 국가 진영에서 왔는가?”를 물어야 합니다.구매팀이 발주 버튼 하나를 누르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특정 국가 연합에 대한 지정학적 선택이 되는 시대입니다.
0.1%만 섞여도 수출 금지? 점점 더 정교해지는 ‘공급망의 무기화’
세계는 지금 공급망을 둘러싼 몇 가지 심각한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변화는, 공급망이 점점 더 정교한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전 세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중국이 희토류와 같은 핵심 광물 자원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또한 지식재산권(IP) 문제와 기술 유출 리스크 역시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여전히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결국 공급망은 서로 의존하는 구조인데, 중국도 무리하게 수출을 막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가정은 너무 안일했습니다. 중국은 과거에는 “언젠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여겨졌던 조치를 “지금, 실제로” 실행에 옮길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 위협의 실체는 단순히 “희토류 수출을 전면 금지하겠다”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훨씬 더 정교하고, 글로벌 비즈니스의 밑바닥 규칙을 뒤흔드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죠.

최근 중국이 제시한 규정 가운데 가장 큰 파장을 불러온 것은 바로 이 조건입니다.
“전 세계 어떤 기업이든, 중국산 희토류가 0.1% 이상 포함된 제품을 수출하려면 중국 정부의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규정이 의미하는 바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예를 들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생산이 100% 미국 공장에서 이루어지더라도, 그 제품 안에 중국에서 온 희토류가 극히 일부(0.1% 이상)라도 섞여 있다면, 그 제품을 세계 시장으로 수출하기 전에 반드시 중국 상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단지 하나의 규제를 넘어, 글로벌 비즈니스의 기본 운영 방식과 경제 질서 전체를 재정의하는 조치입니다. 원산지, 부품 구성, 생산 공정에 쓰인 기술까지 모두 지정학적 규제의 대상이 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가 이미 **동맹과 신뢰가 흔들리는 ‘분열의 시대(Fractured Era)’**로 진입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공급망에서 이를 잘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유럽연합(EU)과 카타르 사이에 벌어진 긴장입니다. EU는 ‘녹색 초강대국’을 목표로 인권·환경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공급망을 제재하는 지속가능성·그린 공급망 규제(CSDDD 등)를 추진해 왔습니다. 이에 대해 카타르는, 자국의 LNG(액화천연가스) 공급이 부당한 제재나 과도한 규제로 위협받을 경우 유럽으로 향하는 에너지 수출을 줄이거나 중단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결국 환경 보호, 인권 존중이라는 명분조차 국가 간 정치·경제적 힘겨루기 앞에서는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불씨가 되어 버리는 것이 오늘날 공급망을 둘러싼 냉혹한 현실입니다.
도망칠 곳은 없다: ‘공급망 다변화’ 전략의 배신
이처럼 지정학적 리스크가 전방위로 확산되자,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내놓은 해법은 명확했습니다.
바로 ‘공급망 다변화(Diversification)’, 이른바 ‘탈중국 전략’입니다.
중국에 집중된 생산 기지와 조달선을 인도, 베트남, 멕시코 등으로 옮기고, 거점 국가를 여러 곳으로 나누어 리스크를 분산시키겠다는 접근이었습니다. 이러한 전략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합리적인 전략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기업들이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새로운 리스크를 키우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명확합니다. 우리가 도망치려 했던 그곳의 공급망조차 결국은 중국의 손 안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도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많은 서구 기업들이 중국으로부터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공장을 인도로 이전하거나, 신규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여기에 대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맞불을 놓았습니다. 바로 중국 엔지니어와 숙련 기술자의 인도 파견과 입국을 제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공장은 건물과 장비만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고도의 기술을 가진 인력이 있어야 설비를 가동하고 품질을 유지할 수 있죠.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이 인력의 이동을 제약하자, 인도 공장들은 제대로 기동하지 못하고, 일부 라인은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졌습니다.
결국 ‘중국 없는 공급망’을 만들기 위해 떠난 기업들이 정작 중국의 허락 없이는 공장 문도 열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내몰리게 된 것입니다.
미국 시장을 겨냥해 멕시코에 생산 기지를 둔 기업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멕시코는 지리적으로 미국과 가깝고, 인건비도 상대적으로 낮아 ‘니어쇼어링(nearshoring)의 성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곳에서 가동되는 많은 공장의 인프라와 부품 공급망은 이미 중국계 기업들이 깊게 장악하고 있습니다.
즉, 서류상으로는 “Made in Mexico”일 수 있으나, 그 부품과 자본, 기술의 뿌리를 따라가면 다시 중국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상당수입니다.
이 모든 사례는 하나의 불편한 진실을 보여줍니다. 공장의 위치를 옮기는 것만으로는, 혹은 공급선을 몇 개 더 추가하는 것만으로는 지정학적 리스크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전략 없이 단순히 ‘탈중국’을 외치며 이전을 감행하면, 기업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더 복잡하고 깊은 지정학적 갈등의 늪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생존을 위해, 공급망 책임자는 이제 ‘지정학적 전략가’가 되어야 한다
이처럼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시대에 기업은 어떻게 생존 전략을 세워야 할까요?
이제 최고공급망책임자(CSCO)의 역할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합니다.
과거처럼 물류 비용을 줄이고 재고를 최적화하는 ‘효율성 중심의 기획자’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국제 정세의 흐름을 읽고, 국가 간 정책 변화와 규제, 보복 조치에 대한 영향을 미리 가늠하며, 공급망 구조를 선제적으로 설계하는 ‘지정학적 전략가(Geopolitical Strategist)’가 되어야 합니다.
이 새로운 역할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바로 ‘주권(Sovereignty)’입니다. 현재 각국 정부는 에너지, 식량, 기술, 데이터 등 핵심 영역에서 타국 의존도를 줄이고 경제적 주권을 되찾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기업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야 합니다.
특정 국가나 진영의 정치적 결정에 의해 사업이 좌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에 맞게 분산·현지화된 ‘주권적 공급망(Sovereign Supply Chain)’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다변화를 넘어, 각 거점이 외부 충격에도 독립적으로 버틸 수 있는 설계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공급망 가시성(Visibility)이 있습니다. 어디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어떤 정책 변화가 어느 구간에 영향을 미치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데이터에 기반한 정밀한 가시성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변화는 수십 년에 걸쳐 천천히 나타나는 장기 트렌드가 아닙니다. 단 몇 년, 때로는 몇 달 사이에 비즈니스 지형을 통째로 바꿔 놓을 수 있는 급격한 파도입니다. 기업은 이제 이윤보다 국가 안보와 지정학적 요소를 우선시해야 하는 냉혹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관망자’로 남는 기업은 이 변화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큽니다. 변화의 파동을 민감하게 감지하고, 데이터에 기반해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기업만이 다음 위기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 거대한 변화의 파도 속에서 트레드링스는 여러분의 비즈니스가 흔들리지 않고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도록, 가장 빠르고 정확한 나침반이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