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물류의 새로운 기준, 트레드링스 입니다.
미국발 관세 정책이 또 한 번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2025년 8월 29일,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CAFC)은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부과해 온 대부분의 관세가 위법이라는 주목할 만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연방대법원 항소 의사를 밝혔고, 전문가들조차 최종 결과를 “동전 던지기”에 비유할 만큼 예측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번 판결이 주목받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단순한 법적 다툼을 넘어, 향후 글로벌 공급망과 해운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불확실성의 신호탄이기 때문입니다. 판결이 어떤 방향으로 확정되든, 세계 무역 환경은 한층 더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늘 트레드링스는 이 판결의 핵심 내용과 함께, 물류 업계와 해운 시장에 미칠 영향, 그리고 우리가 준비해야 할 시나리오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대통령의 권한은 어디까지인가 – IEEPA 관세 위법 판결의 의미
이번 판결의 핵심에는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이라는 법률이 있습니다. 1977년 제정된 이 법은 원래 대통령이 국가 안보에 대한 ‘비상하고 특별한 위협’에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든 정밀한 도구였습니다. 과거에는 이란 자산 동결, 테러 조직 자금 차단처럼 특정 대상을 겨냥한 외과수술 같은 조치에 사용되었죠.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 법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활용했습니다. 무역 적자와 불법 이민을 ‘국가 비상사태’로 선언하고, 이를 근거로 전 세계 교역국에 광범위한 관세를 매긴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통령 권한을 ‘제한’하려고 만든 법이 수십 년이 지나 가장 강력한 ‘무기’로 변신한 셈입니다.

법원은 정확히 이 부분을 문제 삼았습니다. 연방순회항소법원의 판결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규제’는 ‘과세’가 아니다
미국 헌법은 세금과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의회에 명확히 부여합니다. 법원은 IEEPA에 나온 ‘규제(regulate)’라는 단어 하나로 무제한 과세권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법률 어디에도 ‘관세(tariff)’나 ‘세금(tax)’이라는 표현이 없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둘째, ‘중대 문제 원칙’의 적용
행정부가 경제와 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조치를 취하려면, 의회로부터 명확한 권한을 받아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수천억 달러 규모의 관세는 미국 경제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인데, IEEPA라는 포괄적 법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입니다.
결국 사법부는 행정부가 의회의 고유 권한인 ‘과세권’을 침해했다며 브레이크를 건 것입니다.
220조 원의 환급 폭탄과 ‘보이지 않는 비용’
이번 판결은 미국 경제에 두 가지 충격을 안겼습니다.
첫 번째는 1,590억 달러(약 220조 원) 규모의 환급 문제입니다.
만약 대법원이 이번 판결을 확정한다면, 미국 정부는 그동안 징수한 관세를 수입업자들에게 돌려줘야 할 수 있습니다. 미국 법무부가 “재정적 파멸”이라는 표현까지 쓸 정도로 상황이 심각합니다. 국가 재정뿐 아니라 환급 절차를 둘러싼 새로운 혼란도 예상됩니다.

두 번째는 더 심각한 ‘불확실성 비용’입니다.
이는 관세 자체보다 예측 불가능한 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숨겨진 비용을 말합니다. 실제로 기업들은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와 고용을 미루고 있고, 소비자 신뢰도 떨어져 2025년 1분기 미국 경제가 0.3% 위축되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런 불확실성은 글로벌 공급망 전략도 바꾸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효율성 중심의 ‘저스트 인 타임’ 전략을 버리고, 리스크에 대비한 ‘저스트 인 케이스’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비용이 더 들더라도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것이죠. 이는 장기적인 비용 상승과 글로벌 비즈니스의 구조적 변화를 의미합니다.
🌍 미국 무역 파트너 관세율 현황
무역 파트너 | 수정된 관세율 | 4월 2일 발표 관세율 |
---|
해운업계의 극심한 변동성 – 수요 급증과 급락의 반복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인 해운업계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관세 정책은 해운 시장에 극심한 ‘채찍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관세 시행 전, 수입업자들은 관세를 피하려고 물량을 앞당겨 선적하는 ‘프론트-로딩’ 현상을 보였습니다. 2025년 2월 중국-미국 서부 노선의 물동량이 전년 대비 18.7% 급증한 것이 그 예입니다. 하지만 관세가 부과되고 재고가 쌓이자 수요는 즉시 급락했습니다. 불과 두 달 후인 4월에는 24%나 감소했죠.
이런 극단적인 변동은 연쇄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항만은 혼잡해졌고, 운임은 롤러코스터를 탔습니다. 해운사들은 수요가 없을 때는 운항을 취소하는 ‘블랭크 세일링’으로 대응했고, 관세가 유예되어 화물이 몰릴 때는 현물 운임이 하루 만에 75% 뛰는 일도 겪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무관한 제3자까지 피해를 본다는 점입니다. 태평양 노선에 수요가 집중되자, 해운사들은 아시아-남미 같은 다른 노선의 선박을 빼내 재배치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 관세와 무관한 남미 화주들이 선복 부족과 운임 폭등(최대 260% 상승)이라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미국의 일방적 조치가 전 세계 물류 시스템을 뒤흔든 것입니다.

판결이 끝이 아니다 – 계속되는 불확실성
이제 공은 연방대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판결이 나온다고 해서 관세 전쟁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무역 분쟁이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계속될 것으로 봅니다.
설령 IEEPA를 쓸 수 없게 되더라도, 행정부에는 다른 카드가 있습니다. ‘무역확장법 제232조'(국가 안보), ‘무역법 제301조'(불공정 무역 대응) 등이 그것입니다. IEEPA만큼 즉각적이고 포괄적이지는 않지만, 새로운 관세 장벽을 시도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하나의 큰 불확실성이 여러 개의 작은 불확실성으로 쪼개지면서 혼란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두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합니다.
시나리오 A (관세 위법 확정)
단기적으로는 1,590억 달러가 환급되면서 수입업자들의 자금 사정이 나아지고, 수입 수요가 늘어 해운 시장에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행정부가 다른 법률로 새로운 관세를 시도하면서 제2, 제3의 법적 분쟁이 이어질 것입니다.
시나리오 B (관세 합법 확정)
대법원이 관세를 인정하거나 불확실성이 계속될 경우, 높은 운송 비용이 고착화되고 글로벌 수요는 계속 억제됩니다. 해운업계는 구조조정과 네트워크 재편이라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대법원 판결과 관계없이, 미국발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은 이제 모든 기업이 감안해야 할 ‘상수’가 되었습니다. 정치적 리스크와 공급망 회복력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변화를 빠르게 읽고 유연하게 대응하는 기업만이 이 파고를 넘을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