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항로 시범운항, 상업화까지 넘어야 할 3가지 관문

2026년, 8월 20일

안녕하세요. 물류의 새로운 기준, 트레드링스입니다.

한국이 북극항로 시범운항에 나섭니다. 오는 8월 22일 팬스타 아크로(PanStar Acro)호가 부산항을 출항해, 유럽까지 상업 화물을 싣고 북극항로를 시도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 항로가 상업 정기 항로로 자리 잡기까지는 넘어야 할 벽이 적지 않습니다.

북극항로는 과연 물류 담당자가 실제 운송 대안으로 검토할 만한 항로가 될 수 있을까요.

왜 지금 다시 북극항로에 주목하나

북극항로가 다시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거리입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이 항로는 수에즈운하를 지나는 기존 남방항로보다 운송 거리를 최대 35%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는 북극항로로 약 1만 3000km, 수에즈를 경유하면 약 2만km로 차이가 확연합니다. 거리가 줄어드는 만큼 운항 시간과 연료 사용량도 함께 줄어, 화주 입장에서는 비용과 운송 기간을 한꺼번에 아낄 수 있습니다.

거리만큼이나 커진 것이 항로 다변화의 가치입니다. 홍해 사태 이후 주요 선사가 수에즈운하 대신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크게 우회해 온 데다, 최근에는 중동의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특정 항로 하나에 기대는 위험을 줄이자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 위험은 숫자로도 확인됩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항량은 전쟁 전 하루 130~140척 수준에서 최근 한 자릿수에서 10여 척 수준으로 급감했습니다.

이 틈을 러시아도 놓치지 않습니다. 블라디슬라프 마슬렌니코프(Vladislav Maslennikov) 러시아 외무부 유럽문제국장은 최근 북극 포럼에서 지정학적 불안정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북극항로는 남방 항로의 대안으로 갈수록 매력이 커지고 있다며, 지금의 페르시아만 상황이 이를 분명히 보여 준다고 말했습니다.

매력은 이미 실제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중국 선사 씨레전드쉬핑(Sea Legend Shipping)은 이달 북동항로를 이용한 중국~유럽 주간 정기 컨테이너 서비스를 시작했고, 노르웨이의 북극 물류 추적기관 센터 포 하이 노스 로지스틱스(Centre for High North Logistics) 집계로는 지난해 북동항로 통항이 88척·103회에 달해 2022년 43회에서 두 배 넘게 뛰었습니다. 그 대부분이 러시아와 중국 선박이었죠. 북극이 더는 ‘가능성’만의 바다가 아니라는 신호이자, 한국도 더는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게 됐다는 뜻입니다.

북극항로의 정의와 거리·비용 비교, 국내 대응 현황까지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글을 참고해 주세요.

북극항로란? 수에즈보다 32% 짧은 항로, 정기선 전환과 한국 물류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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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항로란? 수에즈보다 32% 짧은 항로, 정기선 전환과 한국 물류의 기회
북극항로는 수에즈항로보다 32% 짧고 유럽행 운송기간을 10일 이상 줄입니다. 정기선 전환 움직임과 중국의 선점 경쟁, 한국 물류가 잡을 기회를 확인해보세요.

북극항로 첫 도전, 팬스타 아크로호

이런 흐름 속에서 한국이 띄우는 첫 배가 바로 팬스타 아크로호입니다. 부산에 거점을 둔 선사 팬스타라인닷컴이 정부 주관 공모를 통해 시범운항 선사로 선정되면서, 22일 부산항을 출항해 영국 펠릭스토우와 네덜란드 로테르담, 폴란드 그단스크를 거쳐 되돌아오는 왕복 40~45일의 항해에 나섭니다.

투입 선박은 팬스타가 HMM에서 사들여 극지 운항용으로 개조한 2700TEU급 컨테이너선으로, 한국인과 인도네시아인 선원 20명이 함께 오릅니다. 팬스타는 자동차 부품과 식품, 화장품을 비롯해 중국·일본발 화물까지 더해 최소 1300TEU의 물량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첫 기항지를 당초 로테르담에서 영국 펠릭스토우로 바꾼 점인데, 유럽연합의 환경 규제에 따른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항로뿐 아니라 규제 비용까지 계산에 넣은 셈이죠.

운항 시점도 계산된 선택입니다. 언론 공식 발언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익명을 요구한 팬스타 관계자는 이 항해가 주로 이뤄질 9월 무렵이면 북극 해빙이 연중 가장 적은 시기라 더 안전한 항해가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여름 3개월이라는 좁은 운항 창 중에서도 가장 안전한 시기를 골라 첫걸음을 뗀 셈입니다.

이 시범운항은 개별 선사의 도전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북극 해운을 국정 우선순위로 삼으면서, 정부 관계자들은 이를 통해 부산항을 글로벌 해양 허브로 탈바꿈시키고 2030년까지 북극항로를 정기 무역로로 자리매김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팬스타 아크로호의 항해는 그 구상의 첫 실증인 셈입니다.

여기에는 조급함도 깔려 있습니다. 팬스타 관계자는 중국이 이미 북극항로 선점을 노리고 있어 한국의 이번 운항이 더 시급해졌다고 말했습니다. 2030년까지 상업 정기 서비스라는 국가적 목표를 이루려면, 한국은 지금까지 갖추지 못했던 운항 경험과 데이터를 쌓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그런데 북극항로에는 수에즈에도 희망봉에도 없는 관문이 하나 있습니다. 항로의 절반이 바로 러시아 바다라는 점입니다.

북극항로의 절반은 러시아 바다

하지만 이 관문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한국 선박이 통과할 예정인 북극항로, 즉 북동항로는 무려 53%가 러시아의 배타적경제수역을 지납니다. 러시아는 이 항로 전체를 하나의 관리 체계로 보고 운항하려는 선박에 사전 운항 정보 제출과 허가 취득을 요구하는데, 국제수역을 자유롭게 오가는 여느 항로와는 성격이 아예 다른 거죠. 한국의 이번 운항 역시 러시아 영해와 배타적경제수역, 일부 내수 구간을 지날 가능성이 있어 러시아 측 허가와 실무 협의가 사실상 시범운항의 출발점입니다.

문제는 이 협의가 순수하게 실무적이지만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먼저 서방의 시선부터 곱지 않습니다. 한 유럽 외교관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론하며 우리는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것이지 관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국 측에 우려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나아가 전문가들은 배가 얼음에 갇히는 등 문제가 생겨 러시아의 도움을 받게 될 경우 대러 제재를 건드릴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만큼, 한국은 이번 운항이 제재를 위반하지 않는다는 점을 미국 측에 입증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다행히 정부의 판단은 비교적 낙관적입니다. 현재 한·러 간에 특별한 외교적 갈등이 없는 만큼 러시아 측 승인을 받는 데 큰 어려움은 없으리라 보고, 미국 등과도 관련 문제를 조율하며 제재 문제든 러시아 승인이든 22일 출항에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으리라고 내다봅니다. 다만 외교의 벽을 넘더라도 마지막 벽이 하나 더 남습니다. 바로 경제성입니다.

북극항로, 거리는 짧아도 비용이 관건

그런데 이 벽도 결코 낮지 않습니다. 첫 번째 걸림돌은 계절입니다. 북극항로는 얼음이 녹는 여름철 약 3개월 동안만 컨테이너선 운항이 가능해, 정해진 일정에 따라 연중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컨테이너 정기선에는 상당한 부담입니다. 지난해 해양정책연구에 관련 연구를 발표한 최혜원 전 해군 장교는 북극항로는 연중 사용할 수 없다며, 컨테이너선이 다닐 수 있는 시기가 여름 3개월뿐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비용 구조도 따져 봐야 합니다. 거리가 짧아지면 연료비는 아낄 수 있지만 그 대신 새로운 비용이 붙습니다. 빙해를 운항할 수 있는 선박을 확보해야 하고 보험료와 쇄빙 지원 비용까지 감당해야 하는데, 거리 단축이 실제 운송 원가 절감으로 이어지는지를 냉정하게 계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여기에 안정적인 물량 확보라는 숙제도 있습니다. 정기선은 적재율이 수익성을 좌우하는 만큼 유럽으로 가는 화물은 물론 돌아오는 항로의 물량까지 채워야 하고, 운송시간 단축 효과가 큰 고부가가치 화물을 얼마나 유치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올해 계절성 정기 서비스에 들어간 중국조차 상업성이 입증됐다기보다 이제 막 본격 검증에 들어선 단계라는 점은, 이 항로가 아직 시험대 위에 있음을 고스란히 보여 줍니다.

북극항로 시범운항이 남길 것

그래서 이번 항해의 진짜 값어치는 성공이냐 실패냐를 가리는 데 있지 않습니다. 팬스타 아크로호의 항해는 단순히 부산에서 유럽까지의 운항 시간을 재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운항 경험을 쌓으며 선박과 항만, 운항 지원체계 등 상업화에 필요한 조건을 하나하나 점검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축적한 경험과 데이터는 2030년 정기 항로화를 판단하는 기초자료로 쓰일 것입니다.

외교부 극지협력 대표를 지낸 정병하 주뉴질랜드 대사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과거엔 북극이 꽁꽁 얼어 단절된 곳이었지만 이젠 빙하가 녹으면서 우리와의 연계성이 높아졌다며, 경제적 기회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북극 거버넌스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북극항로는 험난한 자연환경과 복잡한 국제 역학을 동시에 통과해야 하는 길입니다. 8월 22일 부산항을 떠나는 팬스타 아크로호는 그 길의 첫 이정표를 세우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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