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물류의 새로운 기준, 트레드링스 입니다.
선사와 장기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운임이 급락하자 선사는 결항을 선언했고, 내 화물이 어느 배에 실릴지 아무런 약속도 받지 못했습니다.
계약서를 꺼내 들었지만, 정작 이 상황에 대한 조항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물류 현장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입니다. 장기 계약은 시장 변동성으로부터 공급망을 지키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지만, 정작 계약서 안에 어떤 조항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 그 효력은 천차만별입니다. 최근 함부르크에서 열린 컨테이너 공급망 컨퍼런스(Container Supply Chain Conference)에서는 바로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됐으며, 현장 전문가들이 직접 협상하고 겪은 경험을 나누며 지금 당장 계약서에 넣어야 할 조항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지금 당장 계약서에 넣어야 할 조항들
중소 화주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해 선사와 공동으로 협상하는 쉬프트엑스 유케이(SHIFTX UK)의 키스 개스킨(Keith Gaskin) 대표는 자신이 직접 협상한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지난해 10~11월 아시아에서 연간 계약 협상을 진행하던 당시, 수에즈 운하 재개통에 대한 이야기가 업계 전반에 퍼져 있었습니다. 개스킨 대표는 “재개통이 현실화되면 공급 과잉이 발생할 것이고, 그 여파가 어디로 향할지는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선사와 협상한 것은 이른바 ‘수에즈 조항’이 아니었습니다. 개스킨 대표는 “엄밀히 말하면 수에즈 조항이라고 할 수 없었다”며 “기초 운임이 크게 하락했을 때 선사와 재협상에 재진입할 수 있는 조항이었고, 특정 사건이 아니라 기초 운임 수준 자체에 연동된 조항이었을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결항 상황에 대한 대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운임이 급락하면 선사가 가장 먼저 꺼내드는 카드는 공급 축소이며, 그 첫 번째 수단이 바로 결항(blanked sailing)입니다. 이때 계약서에 아무런 조항이 없다면, 화주는 자신의 화물이 언제 어떤 선박에 실릴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해운 전문 로펌 에이치에프더블유(HFW) 소속 변호사 매슈 고어(Matthew Gore)는 바로 이 공백을 계약서로 메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결항만이 문제가 아니라, 예정 항구가 아닌 다른 곳에 컨테이너가 하역되는 경우도 있다”며 “선사가 결항 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확실한 의무와 약속을 계약서에 담아두도록 화주들에게 권고한다”고 말했습니다.

고어는 구체적으로 어떤 확약을 받아야 하는지도 짚었습니다.
그는 “결항인지, 지연 출항인지, 순연(sliding)인지 정의하기 나름이지만, 공간 문제로 화물이 롤오버(roll-over)될 경우 그 컨테이너가 언제 출항할 수 있는지 선사로부터 확실한 약속을 받아야 한다”며 “다음 배에 실리는 것인지, 아니면 그다음으로 가장 빠른 배에 실리는 것인지, 어떤 선박에 실릴 것인지까지 확약을 받아두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런 내용들을 계약서에 담아두어야 정작 출발해야 할 시점에 화물이 아직 출발지에 묶여 있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고어는 조항 설계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를 하나 더 짚었습니다. 계약서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대부분의 화주가 크게 과소평가한다는 점입니다. 법무·조달·물류 부서가 모두 참여해 각 부서의 이해관계를 계약서에 반영해야 하고, 대형 화주의 입찰 이후 선사의 검토·피드백·협상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1년 이상 협상이 계속되는 사례를 실제로 목격했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그 기간 동안의 현실입니다. 그는 “화물은 계속 움직이고 운임도 대체로 합의된 수준대로 지불되고 있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규율하는 계약서가 없는 상태”라며 “협상이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의무에서 발을 빼려 해도 계약서를 근거로 우리가 합의한 내용이 이것이라고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계약 체결에 걸리는 시간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많은 화주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라고 경고했습니다.
시장이 흔들리기 전에, 이 세 가지 조항을 계약서에 반드시 담아두세요
이번 컨퍼런스에서 공유된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입니다. 시장이 흔들리기 전에, 계약서 안에 그 흔들림을 버텨낼 조항을 미리 설계해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운임 급락에 대비한 재협상 진입 조항
- 결항·지연·순연 등 예외 상황 발생 시 선사의 구체적인 이행 의무 조항
- 화물이 실릴 선박에 대한 확약 조항
이 세 가지가 계약서 안에 단단히 담겨 있다면,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더라도 화물은 목적지를 향해 움직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아무리 정교한 조항도, 협상이 끝나지 않은 계약서 안에 있다면 위기 앞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조항을 제대로 설계하는 것과 그 계약서를 실제로 완성하는 것, 이 두 가지가 모두 갖춰졌을 때 비로소 장기 계약은 공급망을 지키는 방패가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