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협상 타결: 자동차·조선·철강 업계의 복잡한 손익계산서

2025년, 8월 1일
한미 관세 협상

물류 업무가 쉬워지는 곳, 트레드링스입니다.

마침내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되었습니다. ‘관세 25%’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지만, 이번 합의는 안도감보다는 새로운 과제와 전략 수립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대미 투자 3,500억 달러와 에너지 구매 1,000억 달러라는 막대한 대가로 얻어낸 ‘관세율 15%’라는 결과가 우리 산업계, 특히 자동차, 조선, 철강이라는 핵심 수출 업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당장 우리 기업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살펴보겠습니다.

한미 관세 협상, 핵심 결과 요약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예정일(8월 1일)을 불과 하루 앞두고 양국 협상단은 극적인 타결을 이루어냈습니다.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한국의 양보: 미국에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펀드를 조성하고, 향후 4년간 1,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LNG(액화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구매하기로 약속했습니다.
  • 미국의 양보: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당초 예고했던 25%에서 15%로 인하했습니다. 이는 자동차 품목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일단 경제계는 급한 불을 껐다며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당장의 수출 불확실성이 해소됐고, 우리의 핵심 경쟁 상대인 일본, 유럽연합(EU)과 동일한 15% 관세율을 적용받게 되어 최소한의 경쟁 여건은 확보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국내 농축산업계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었던 쌀과 소고기 시장의 추가 개방을 막아낸 것은 이번 협상의 주요한 성과로 평가됩니다.

업종별 희비: 자동차 ‘부담’, 조선 ‘기회’, 철강 ‘충격’

하지만 이번 합의 내용을 산업별로 면밀히 들여다보면 각 업계의 표정은 극명하게 엇갈립니다. 자동차 업계는 실질적인 부담 증가를, 조선 업계는 새로운 기회를, 철강 업계는 절망적인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자동차 업계: 사라진 ‘FTA 프리미엄’, 원가 부담 현실로

자동차 업계는 25%라는 최악의 관세는 피했다는 점에서 안도하면서도, 속내는 복잡합니다. 가장 뼈아픈 부분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통해 누려왔던 ‘무관세’ 혜택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한국산 자동차는 미국 시장에서 관세 0%의 혜택을 본 반면, 일본과 EU산 자동차는 2.5%의 관세를 적용받았습니다. 이 미세한 차이가 ‘가성비’를 앞세운 한국 자동차의 핵심 경쟁력이었지만, 이제는 모두가 동일하게 15%의 관세를 적용받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기존 관세율을 기준으로 보면, 일본과 EU는 12.5%포인트가 인상된 반면, 한국은 15%포인트가 인상되어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더욱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 셈입니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15% 관세가 온전히 적용될 경우 현대차·기아의 연간 부담 비용은 약 5조 6,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는 지난해 양사 영업이익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입니다. 관세 부담을 소비자 가격에 모두 전가하기는 어려운 만큼, 기업들은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거나, 현지 생산을 확대하고 원가 절감 방안을 모색하는 등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놓였습니다.

조선 업계: ‘MASGA 프로젝트’라는 기회와 기술 유출의 우려

반면 조선업계는 이번 협상 최대 수혜자로 떠오르며 기대감에 부푼 모습입니다. 정부가 협상의 핵심 카드로 활용한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 덕분입니다.

이번 합의에는 1,500억 달러(약 209조 원) 규모의 한미 조선 협력 펀드 조성이 포함되었습니다. 이 펀드는 국내 조선사들의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현지 조선소 인수·합병(M&A) 및 시설 투자 ▲선박 수주 시 필요한 선수금환급보증(RG) 등 금융 지원 ▲자율운항선박 등 미래 기술 공동 개발 등에 사용될 전망입니다.

세계 최고의 건조 기술력을 가진 한국과 소프트웨어 강국인 미국이 협력하면 자율운항선박 등 미래 선박 시장에서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옵니다. 특히 미국 정부가 자국 내 선박 건조를 의무화한 ‘존스법’ 등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낼 경우, 한국의 조선 기술과 미국의 시장이 결합하는 새로운 성장 기회가 열릴 수 있습니다.

다만,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합니다. 펀드 규모가 국내 조선 3사 시가총액 합계의 2배가 넘을 정도로 거대하고, 구체적인 운영 방식이 정해지지 않아 불확실성이 큽니다. 또한, 공동 설계 및 생산 과정에서 우리의 핵심 기술이 미국으로 유출될 수 있다는 점과, 장기적으로 미국 조선업이 재건되면 오히려 한국에 대한 발주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경계심도 필요합니다.

철강 업계: 50% 고율 관세 유지, 벼랑 끝 경쟁

자동차와 조선업계와 달리, 철강업계는 그야말로 충격에 빠졌습니다. 연간 263만 톤에 달했던 대미 수출 무관세 쿼터가 폐지되고, 지난 5월부터 적용된 50%의 고율 관세가 그대로 유지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미국 시장에서 한국산 철강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경쟁국인 일본 역시 동일한 50% 관세를 적용받는다는 점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지만, 최근 일본제철이 미국 US스틸을 인수하면서 상황은 더욱 불리해졌습니다. 일본은 US스틸을 통해 미국 내에서 직접 철강을 생산하며 관세를 우회할 수 있는 길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국내 철강사들은 정부 차원의 지원책을 절실히 바라는 한편, 추가 협상을 통한 관세 인하를 기대하고 있지만 전망은 밝지 않습니다.

3,500억 달러 펀드, 기대와 우려 사이의 ‘동상이몽’

이번 협상의 또 다른 핵심인 3,500억 달러 투자 펀드는 양국의 ‘동상이몽’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한국 정부는 2,000억 달러 규모의 첨단 산업 펀드가 우리 기업의 미국 진출을 돕기 위한 대출과 보증 위주로 운영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 펀드를 “미국이 소유하고 통제하며 대통령인 내가 선택하는 투자“라고 규정했고,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펀드 이익의 90%는 미국인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투자 방식, 주도권, 수익 배분 등 민감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채 ‘비망록’ 형태로 남겨진 점은 향후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습니다. 2주 내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기업들에게 직접적인 ‘투자 보따리’를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후속 협상 과정에서 국익을 지키기 위한 치밀한 전략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불확실성 해소, 그러나 진짜 협상은 지금부터

이번 한미 관세 협상 타결은 수출 전선에 드리웠던 최악의 불확실성을 걷어냈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 산업계는 새로운 현실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자동차 업계는 원가 상승이라는 발등의 불을 꺼야 하고, 조선업계는 새로운 기회를 잡기 위한 과감한 투자와 전략이 필요하며, 철강업계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처럼 지정학적 리스크로 관세율과 통상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공급망의 작은 변화 하나가 기업의 손익에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자동차 업계처럼 생산 기지 이전이나 부품 조달 경로 변경을 고려해야 할 때, 화물의 현재 위치와 도착 예정 시간(ETA)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리스크 관리의 핵심입니다. 예상치 못한 지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대체 운송 경로를 모색하는 등 능동적인 위기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협상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입니다. 정부는 앞으로 이어질 세부 협상에서 국익을 극대화해야 하며, 기업들은 변화된 통상 환경에 맞춰 공급망 전략을 재점검하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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