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폭풍: 비용 문제를 넘어 생존 전략이 된 공급망 관리
물류 업무가 쉬워지는 곳, 트레드링스입니다.
2025년 글로벌 무역 환경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강력한 관세 정책으로 인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갯속에 놓여있습니다. 특정 국가와 품목을 대상으로 10%에서 최대 50%에 이르는 관세가 부과되면서, 기업들에게 공급망 관리는 더 이상 비용 절감을 위한 백오피스 업무가 아닌,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핵심 전략 과제로 떠오랐습니다. KPMG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공급망 임원의 약 47%가 자신의 비즈니스가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이는 관세와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얼마나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관세 대응책은 수출입 실무자들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미 발빠른 기업들은 행동에 나섰습니다. 실제 글로벌 기업들이 관세 장벽 앞에서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는지 사례를 살펴보고, 우리 기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실질적인 힌트를 얻고자 합니다.
사례 1: 베스트바이(Best Buy) – 소비자와 공급사 사이, ‘5가지 생존 공식’
미국의 대표적인 전자제품 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는 관세 정책의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인 기업입니다. 매출 원가에서 중국산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60%에 달했던 만큼, 관세 부과는 곧바로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습니다. 실제로 베스트바이는 관세 불확실성을 이유로 연간 실적 가이던스를 하향 조정해야 했습니다.

베스트바이가 이 위기 속에서 꺼내든 카드는 어느 한쪽에만 의존하지 않는, 다각적이고 유연한 대응 전략이었습니다. 코리 배리 CEO가 직접 밝힌 5가지 대응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 제조 유연성 활용: 2018년 이후부터 협력업체(Vendor)들이 중국 외 지역에 생산 거점을 마련하도록 꾸준히 유도해왔습니다. 그 결과, 최근 관세 부과 시점에는 중국산 제품 비중을 기존 55%에서 30~35% 수준까지 낮추며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단기적인 대응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의 공급망 리스크 분산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줍니다.
- 공급사와 비용 협상: 관세 부담을 베스트바이 혼자 떠안는 대신, 제품을 공급하는 협력사들과 적극적인 비용 분담 협상에 나섰습니다. 일부 파트너에게는 물량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협상 레버리지를 확보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했습니다.
- 공급 국가 다변화: 특정 제품을 최소 두 곳 이상의 국가에서 생산 및 공급할 수 있도록 파트너들을 독려했습니다. 특정 국가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즉시 대체 공급선을 확보하기 위한 ‘컨틴전시 플랜’의 일환입니다.
- 제품 구성 조정: 관세 영향이 큰 제품군의 비중을 줄이고, 상대적으로 영향이 적은 제품군의 판매를 늘리는 방식으로 전체적인 비용 구조를 최적화했습니다. 이를 통해 소비자에게 다양한 가격대의 선택지를 유지하면서도 수익성을 방어하는 전략입니다.
- 가격 조정: 모든 노력을 기울인 후, 최후의 수단으로 일부 가격 인상을 단행했습니다. 베리 CEO는 이를 “가장 마지막 수단”이라고 표현하며,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데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베스트바이의 사례는 관세 부담을 공급망, 제품 포트폴리오, 가격 정책 등 기업 운영의 모든 단계에서 분산시키려는 다각적인 노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입니다.
사례 2: HP – ‘탈(脫)중국’ 가속화와 물류망 재설계라는 정공법
글로벌 PC 및 프린터 제조사인 HP는 관세 충격에 더욱 빠르고 과감한 정공법으로 대응했습니다. HP 역시 관세의 영향으로 2025 회계연도 이익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지만, 동시에 비용 충격을 상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신속하게 발표했습니다.
HP 전략의 핵심은 ‘생산기지 이전 가속화’와 ‘물류 네트워크 재설계’였습니다. 엔리케 로레스 CEO는 당초 2025년 9월까지 완료하려던 북미향 제품의 탈중국 계획을 6월 말까지 앞당겨 거의 모든 미국 수입품을 중국 외 지역에서 생산하도록 조치했습니다. HP가 생산 역량을 확대한 국가는 인도, 멕시코, 태국, 베트남, 그리고 미국 본토 등으로,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다변화 전략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물류 네트워크를 재설계한 부분입니다. HP는 캐나다와 중남미로 향하는 제품의 유통 허브 역할을 미국이 담당하던 기존 방식을 변경했습니다. 미국을 경유할 때 부과될 수 있는 관세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창의적인 해결책입니다. 관세가 단순히 생산지의 문제가 아니라, 경로에 따라서도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라는 점을 간파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입니다. 물론 HP 역시 PC와 프린터 가격을 인상하며 비용 일부를 상쇄했지만, 그 근간에는 공급망의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과감한 결단이 있었습니다.
사례 3: MP 머티리얼즈(MP Materials) – 국가 안보와 결합된 ‘미국 중심’ 공급망 구축
앞선 두 기업이 관세 리스크를 ‘회피’하거나 ‘분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미국 유일의 희토류 생산업체인 MP 머티리얼즈는 ‘정면 돌파’하며 새로운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희토류는 스마트폰, 전기차, 제트 엔진 등 첨단 산업과 국방 기술의 필수 소재이지만, 미국은 공급망의 대부분을 해외(특히 중국)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MP 머티리얼즈는 이러한 상황을 역이용해, 미 국방부와 수십억 달러 규모의 대규모 공공-민간 파트너십을 체결했습니다. 파트너십의 목표는 해외 의존도를 줄이고, 희토류 자석의 탐사, 채굴, 정제, 생산에 이르는 완결형(end-to-end) 공급망을 미국 내에 구축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MP 머티리얼즈는 국방부의 투자를 받아 두 번째 자석 제조 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며, 2028년 가동이 시작되면 연간 1만 톤의 희토류 자석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리쇼어링, 생산기지 이전을 넘어, 국가 안보와 연계하여 자국 중심의 강력하고 안정적인 공급망 생태계를 만들려는 전략적 움직임입니다. 관세와 지정학적 리스크가 특정 기업에게는 오히려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결정적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실무자를 위한 시사점: 불확실성을 줄이는 공급망 전략
베스트바이, HP, MP 머티리얼즈의 사례는 오늘날의 공급망 관리가 단 하나의 정답이 없는 복잡한 방정식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하지만 공통된 전략 방향은 도출할 수 있습니다.
- 공급망 다변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중국+1’을 넘어,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분산할 수 있는 다각화된 소싱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야 합니다.
- 생산지를 넘어 물류 경로까지 최적화해야 합니다. 관세는 통관되는 국가를 기준으로 부과되므로,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물류 네트워크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재설계해야 합니다.
- 공급망 가시성 확보는 리스크 관리의 출발점입니다. 이처럼 지정학적 리스크로 선박의 도착 예정 시간(ETA)이 수시로 변경되고 물류망이 복잡하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화물의 현재 위치를 B/L 번호만으로 실시간 추적할 수 있는 가시성 솔루션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예상치 못한 지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대체 운송 경로를 모색하는 등 능동적인 리스크 관리가 가능해집니다.
관세 전쟁으로 대표되는 무역 환경의 불확실성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다른 기업의 성공 사례를 면밀히 분석하고 우리 회사에 맞는 최적의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