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적 위협은 없지만 운임은 44% 폭등, 보험료는 5억…
데이터와 법률로 파헤치는 이스라엘 이란 전쟁이 촉발한 호르무즈 해협의 진짜 위기
안녕하세요. 언제나 편리한 수출입 시장을 만들고 있는 트레드링스입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 분쟁이 시작됐지만,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바닷길인 호르무즈 해협은 묘한 침묵에 휩싸여 있습니다.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은 아직 폐쇄된 적이 없으며, 이란 외무장관도 자국을 포함한 주요 교역국 모두의 이익을 해칠 수 있는 전쟁 확대를 원치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보안 분석가들도 “상선에 대한 신뢰할 만한 위협은 구체화되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평가와는 달리, 세계 원유 수송량의 35%가 지나는 이 핵심 길목 입구에는 거대한 유조선들이 유령처럼 멈춰 서서 망설이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지금부터 데이터와 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해, 이 묘한 침묵 뒤에 숨겨진 세 가지 리스크의 실체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안갯속 항해의 대가: 호르무즈를 마비시킨 ‘보이지 않는 비용’
이스라엘 이란 전쟁이 시작된 후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선박들이 망설이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추상적인 공포가 아닌 매우 현실적인 ‘돈’ 문제입니다. 위험 지역에 진입하기 위해 선사들이 지불해야 하는 막대한 선지급 비용이, 이들의 발목을 잡는 첫 번째 족쇄가 되고 있습니다.
선택의 대가: 항차당 5억 원의 ‘전쟁위험할증료(AWRP)’
가장 핵심적인 비용은 바로 ‘전쟁위험할증료(Additional War Risk Premiums, AWRP)’입니다. 이는 미사일 공격, 나포, 억류 등 전쟁 관련 행위로 발생하는 선박의 손실을 보상하는 필수 보험입니다. 해상 전문 매체 아거스 미디어(Argus Media)에 따르면, 분쟁 발발 이후 보험사들은 이 비용을 극단적으로 인상하고 있습니다.
분쟁 이전, 이 지역의 표준 AWRP 요율은 선체 보험 가치의 0.125%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일부 보험사들은 0.2%에서 최대 0.4%(선박 선체 및 기계 보험 가치에 대한 비율)에 달하는 요율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는 불과 일주일 전보다 최소 50% 이상 높은 수준입니다.
이 수치가 실제 얼마의 부담인지 계산해 보면 그 심각성이 드러납니다. 아거스 미디어의 추산에 따르면, 9,000만 달러(약 1,200억 원) 상당의 초대형 유조선(VLCC)이 0.4%의 AWRP를 적용받을 경우, 항차당 추가 보험료는 무려 $360,000(약 5억 원)에 달합니다. 물론 선주는 사고가 없을 시 이 보험료의 최대 50%를 ‘무사고 보너스’로 돌려받을 수도 있지만, 이는 여전히 막대한 선지급 비용 부담으로 남으며, 이 비용은 대부분 용선주(화주)에게 전가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막대한 금융 부담은 선사들이 섣불리 호르무즈 해협으로 진입하기보다, 차라리 상황을 관망하는 ‘계산된 기다림’을 선택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되고 있습니다.
선사들의 전략적 선택: ‘일단 멈춤’
이처럼 천정부지로 치솟은 비용은 곧바로 선사들의 실제 행동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항해하는 대신, ‘일단 멈춤’을 선택하며 상황을 관망하는 ‘운항 기피’ 현상이 뚜렷해진 것입니다.
이는 여러 구체적인 데이터를 통해 확인됩니다. S&P 글로벌 커머디티스 앳 씨(S&P Global Commodities at Sea)에 따르면, 분쟁이 시작된 6월 15일 주간 걸프 지역으로 향하는 빈 유조선의 수는 일평균 712척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2021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선사 에이전시 인치케이프(Inchcape)의 애널리스트 이안 윌킨슨(Ian Wilkinson) 역시 “수많은 선박들이 (걸프)만에 진입하기 전 명령이나 더 명확한 상황을 기다리고 있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이러한 전략적인 기다림은 특정 기업의 움직임에서도 명확히 드러납니다. 카타르에너지는 자사의 LNG 선박들에게 “화물 선적 하루 전까지 호르무즈 해협 밖에 머물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했습니다.
공급 부족이 불러온 2차 비용: 운임 폭등
그리고 이렇게 운항을 기피하는 선박이 늘어나자, 시장의 공급과 수요 균형이 무너지며 2차적인 비용 폭등, 즉 운임 급등이라는 연쇄 반응이 시작되었습니다.
S&P 글로벌의 플래츠(Platts)에 따르면 2025년 6월 18일, 페르시아만-중국 노선의 27만 톤급 원유 운임은 톤당 15.26달러로 나타났는데, 이는 불과 일주일 만에 44%나 폭등한 수치입니다.
이러한 운임 상승세는 호르무즈 해협에만 국한되지 않고, 서아프리카와 미주 등 다른 지역의 운임까지 끌어올리는 연쇄 효과를 낳고 있습니다.

2. 레이더 위의 유령: GPS 교란이 부른 충돌 사고의 진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5억 원의 비용을 감수하고 항해에 나선다고 해도, 선박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이미 새로운 형태의 전쟁, 즉 선박의 첨단 장비를 무력화시키는 ‘전자전’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보이지 않는 위험’에 대한 경고는 여러 전문가들을 통해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유엔(UN)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은 호르무즈 해협 인근의 GPS 신호 교란(재밍)과 위치 조작(스푸핑)이 급증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여왔습니다. 보안업체 앰브레이(Ambrey)의 분석가 데이비드 뮐러(David Mueller) 역시 “UAE, 카타르, 바레인 등 페르시아만 전역에서 심각한 GPS 교란이 목격되고 있다”며 모든 선박의 철저한 대비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문가들의 경고가 무색하게도, 우려는 결국 최악의 사고로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2025년 6월 17일, 200만 배럴의 이라크산 원유를 싣고 중국으로 향하던 초대형 유조선(VLCC) ‘프런트 이글(Front Eagle)’호가 수에즈맥스급 유조선 ‘아달린(Adalynn)’호와 충돌한 것입니다.
UAE 에너지부는 공식적으로 이 사고의 원인을 “항해상의 오판”이라고 발표하며, 최근 급증한 전자전과의 연관성을 명시적으로 피했습니다. 하지만 사고의 배경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오판으로 치부하기 어렵습니다. 해운 분석업체 윈워드(Windward)에 따르면, 이스라엘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약 1,000척의 선박이 이 지역에서 대규모 전파 방해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사고 선박인 ‘프런트 이글’호는 충돌 며칠 전, AIS(선박자동식별장치) 추적 시스템 상에서 실제 위치가 아닌 이란 내륙에 있는 것으로 표시되는 등 심각한 위치 오류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GPS 교란이 충돌의 ‘직접 원인’이라는 법적 증거는 없을지라도, 전문가들의 경고가 현실화된 이 사고는 모든 선박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공격’이 만연한 바다에서 과연 ‘안전한 항해’는 가능한가? 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야말로 선박들을 호르무즈 해협 앞에 멈춰 세우는 두 번째 핵심 이유입니다.

3. ‘제2의 홍해’라는 악몽: 나포 위협과 복잡한 법적 분쟁
선박들이 망설이는 마지막 이유는 홍해 사태에서 얻은 값비싼 교훈과 그로 인해 파생된 복잡한 법적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이란 전쟁이 호르무즈 해협을 ‘제2의 홍해’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의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가 전면 봉쇄가 아닌, ‘선별적 타격’이라고 분석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이나 그 동맹국과 명백한 연관이 있는 선박을 골라 나포하거나 공격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최근 홍해에서 후티 반군이 보여준 공격 패턴과 매우 유사하며, 모든 선박에 ‘내가 다음 타겟이 될 수 있다’는 심리적 압박을 가하기에 충분합니다.
이러한 ‘선별적 공격’ 시나리오는 당장 선주와 용선주 간의 운송 계약서를 법적 분쟁의 중심으로 끌고 들어옵니다. 대부분의 운송 계약서에는 전쟁위험약관(BIMCO의 CONWARTIME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약관은 선주와 선장이 ‘합리적인 판단’ 하에 선박이 전쟁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운항을 거부할 권리를 부여합니다.
이러한 선주의 권리는, 특히 ‘위험의 질적 변화(qualitative change)’라는 법적 논리를 만나 더욱 강력해집니다. 즉, 분쟁 전에 계약을 체결했더라도, 이스라엘 이란 전쟁이 발발한 6월 13일 이후에는 위험의 성격이 질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에 운항 거부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만약 선주가 이 권리를 행사해 운항을 거부하면, 용선주는 계약에 따라 48시간 내에 안전한 대체항을 지정해야 하는 ’48시간의 딜레마’에 빠집니다. 만약 용선주가 시간 내에 대체항을 지정하지 못하면, 선주는 자신이 선택하는 안전한 항구에 화물을 내려놓을 수 있으며, 모든 추가 비용은 용선주가 부담하게 됩니다. 이러한 복잡한 위험 때문에, 선주들은 봉쇄나 군사적 억류로 선박이 장기간 운항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는 ‘봉쇄 및 억류(Blocking and Trapping)’ 전문 보험 가입까지 추가로 고려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기다림을 넘어, 정교한 전략으로 대응하라
호르무즈 해협의 역설적인 침묵은 공포로 인한 마비가 아닙니다. 이는 전 세계 해운업계가 직면한 전례 없는 복합 위기 속에서, 생존을 위한 가장 정교하고 복잡한 리스크 계산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직접적인 포성은 없지만, 하루 5억 원에 달하는 ‘비용의 포탄’이 매일 발사되고 있습니다. 레이더를 무력화하는 ‘전자전의 안개’가 항로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으며, 언제든 ‘제2의 홍해’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모든 계약서를 ‘법적인 지뢰’로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번 호르무즈 사태는 더 이상 전통적인 방식만으로는 해상 리스크를 관리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러한 복합적인 위기 상황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다중 데이터를 기반으로 위험 징후를 사전에 감지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고도화된 위험 관리 시스템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적 접근을 바탕으로, 모든 이해관계자는 다음과 같은 5가지 핵심 전략을 통해 위기에 대응해야 합니다.
- 안전 최우선 원칙: 계약상 의무 이전에 선박과 선원의 물리적 안전을 모든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임박한 위험이 있는 곳으로 운항할 의무는 없습니다.
- 데이터 기반의 신중한 위험 평가: 용선주의 지시를 받으면 즉각 따르기보다, 독립적인 위험 평가를 수행하고 관련 증거를 확보할 합리적인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 적극적인 소통과 협력: 선주와 용선주는 적대적 관계가 아닌 협력적 파트너로서, 위험 완화 방안을 찾기 위해 가능한 한 최대한 투명하게 소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 엄격한 계약 절차 준수: 전쟁위험약관 등에 따른 권리를 행사할 때는 계약서에 명시된 최소한의 통지 요건과 절차를 반드시 엄격하게 따라야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 미래를 대비하는 추가 약관: 향후 이 지역 운항이 포함된 신규 계약 체결 시, 현재의 불확실성을 보완하고 각 당사자의 권리와 책임을 명확히 하는 별도의 추가 조항을 검토해야 합니다.
결국 이 정교한 계산의 결과가 ‘운항’의 가치를 넘어설 때까지, 호르무즈 해협의 ‘전략적 침묵’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더 이상 뉴스가 아닌, 모든 기업의 대차대조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수가 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고 있습니다.

